나는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엘지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야구장을 가다가 갑자기 길에서 쓰러지면 사람들이 나를 도와줄까?’ 그때 ‘그래도 엘지 트윈스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라면 나를 도와주겠지!’라는 근거 없는 확신으로 생각을 마무리한다.
입장을 바꿔서 만약 내 앞에 엘지 트윈스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쓰러진다면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사람을 쳐다볼 것이며 그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 사람을 도울 것이다.
엘지 트윈스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 사람은 나와 질긴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름을 몰라도 상관없다.
어디에 살며 무슨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엘지 트윈스 팬이고 나도 엘지 트윈스 팬이니까 그것으로 충분하다.
남이 아니라 우리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자밀 자키 교수가 쓴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책에 실제로 이런 생각을 실험한 심리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영국의 유명한 축구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열성 팬들을 모집했다.
모집된 맨유 팬들은 맨유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관한 글을 썼다.
그리고 다른 건물에 가서 맨유를 응원하는 영상을 촬영하기로 했다.
그 건물로 이동하는 중에 조깅을 하다가 발목을 삐어 넘어지는 사람을 만났다.
물론 그 사람은 연출이다.
맨유 팬인 실험자들은 바삐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자신들 앞에 넘어진 사람이 맨유 유니폼을 입고 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결과는 실험 참가자들의 90% 이상이 발걸음을 멈추고 그 넘어진 사람에게 다가가서 도와주었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나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여기에서 또 다른 실험을 해 보았다.
만약 그 넘어진 사람이 맨유 유니폼이 아니라 리버풀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놀랍게도 실험자들 중에서 70%가 쓰러진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그 실험 결과를 읽는 순간 마음에 큰 돌덩이가 던져지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을 적나라하게 들킨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실험을 당하는 입장이라면 나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내 마음에 ‘리버풀 팬이네.
넘어져도 싸다 싸.’라며 고소해했을 것이다.
그가 어떤 유니폼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내 마음이 이렇게 나뉜다.
이러니 내가 선한 사마리아인을 닮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나를 향해서 착하다고 하는 사람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다.
단지 나와 같은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나와 같은 지역 출신이거나 같은 학교를 나왔다거나 나와 같은 종교이거나.
착한 척하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것 같다.
굳이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까지 들먹일 필요는 없다.
사람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인정한다.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하고 그다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집단은 어떻게 되든 일단 신경을 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제일 많이 신경을 쓰는 것은 우리 가족이고 그다음은 확대된 식구들이며 그다음은 내가 속한 집단들이고 그다음은 대한민국과 한민족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든 관심 없다.
오직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정말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처럼 나는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람이다.
나와 관련된 사람들만 생각한다.
전 세계에 흩어진 85억 명의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런 이기적인 마음을 제거하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까? 방법이 있기는 하다.
모든 사람을 내가 속한 집단에 받아들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