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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17. 2023

지난 시간 동안 나에게 딱 맞는 길을 걸었다


2023년의 절반도 다 지나가고 있다.

지난 반년을 돌아보니 특별할 것 없이 지났다.

어떤 사람은 지난 반년 동안에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극과 극을 오가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생 최악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풀리면 뭔가 희망찬 일들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그들의 기대만큼 따라가 주지 못한 것 같다.

살림이 좀 나아지려나 했는데 더 힘들어졌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전이나 이후나 경제 사정은 안 좋거나 너무 안 좋거나이다.

신문에서는 연일 ‘네 탓이오!’를 외치는 기사가 도배를 했다.

좋은 소식들도 있을 텐데 기자들의 눈에는, 아니 편집자들의 눈에는 안 좋은 소식만 보이나 보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 뚝 끊고 살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지난 반년의 시간이 그랬다.




개인적으로 지난 6개월은 아쉬움이 많다.

새해가 시작되던 1월에는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좋은 결과물을 손에 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을 내려고 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가는 지금은 손에 든 게 없다.

성과물이라고 내세울만한 게 없다.

6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보인다.

달라진 것이 있기는 하다.

6개월의 시간을 더 살았다는 것.

내가 느끼기에도 눈의 시력이 좀 더 떨어졌고 머리에 흰머리가 좀 더 많아졌다.

그리고 6개월어치의 살이 더 쪘다.

누가 나에게 살쪘다고 말을 하면 굳이 나잇살이라고 우기고 싶다.

6개월 동안 돈 들여서 먹였다.

그만큼 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6개월 동안 병치레를 하지 않았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충격적인 일은 내 주변에 없었다.

여전히 숲속을 헤매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걸어가고 있다.

지난 반년의 시간이 그랬다.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온 것 같다.

그리고 계속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르막길을 걷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내리막길 구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내리막길이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맞는 길이었다.

지도에 분명히 있는 길이었다.

지도가 평평하니까 길도 평평한 줄 알았다.

막상 길을 걸어보니 평평한 길은 없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발만 내려가는 게 아니라 마음도 내려가고 기분도 내려갔다.

공기의 압력이 내 어깨를 꽉 누르는 것 같아서 기를 펼 수가 없었다.

오르막길은 눈에 띄는데 내리막길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눈에 띄고 싶지 않다.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남의 눈에 띄는 것은 더더욱 싫다.

그래서 잘 보이지 않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두 높은 곳만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모인다.

그러니 잘 내려가는 것도 실력이다.

기왕에 내려가는 길이라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끝까지 가 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마리아나 해구는 지구에서 가장 깊이 내려갈 수 있는 바다이다.

지금까지의 관측으로는 1만 1천 킬로미터나 내려간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마리아나 해구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높은 건물만 랜드마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낮은 곳도 충분히 랜드마크가 된다.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시점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 내려갔던 때이다.

청춘의 시절일 수도 있고 중장년의 시절일 수도 있다.

내리막길을 알아야 반대로 오르막길도 알게 된다.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나에게 딱 맞는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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