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
그 중심에 사라예보라는 도시가 있다.
지금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다.
이곳에는 성당과 모스크, 정교회와 유대교 회당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다양한 종교를 인정하면서 발전한 도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종교가 다르다는 것은 그 종교만큼 다양한 민족이 모여 있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민족마다 자신들만의 특정 종교를 믿었었다.
그런데 이 다양성은 어느 한순간 심각한 대립을 자아내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할 때는 다양한 색으로 채색된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나의 색으로 저 사람의 색을 덮어버리려고 한다.
그래서 싸움이 나고 전쟁이 발발한다.
다 같이 평화롭게 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
어디까지나 생각이다.
현실에서는 내가 평화롭게 살려면 다른 사람을 밟아야 한다는 논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
사라예보는 그런 인간의 심리를 극명하게 보여준 도시이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전 유럽을 뒤흔들었던 1차 세계대전도 사라예보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에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저들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게 전쟁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라예보에도 평화가 오는 듯했다.
가톨릭 신자와 정교회 교인, 유대교인과 무슬림이 서로 이웃하며 살았다.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버스를 탔다.
그랬던 사라예보에 1992년부터 이상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세르비아 민병대가 시민들을 향해 총질을 했다.
3년 동안 이어진 유혈충돌 때문에 45만 명이었던 인구는 3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도시는 포격을 받아 불에 탔고 건물은 무너져내렸다.
불과 얼마 전인 1984년에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도시였는데 말이다.
사라예보를 포위한 세르비아 민병대는 도시의 전기와 수도마저 끊어버렸다.
빵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섰다.
그 사람들 사이로 폭탄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2년 5월에 있었던 일이다.
사라예보는 암흑의 도시, 죽음의 도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에 사라예보에 음악 소리가 울려퍼졌다.
음악의 진원지는 전날 폭탄이 떨어졌던 그 자리였다.
누군가 첼로를 연주하고 있었다.
사라예보 오케스트라의 수석 첼리스트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였다.
그는 마치 연주회를 하는 것처럼 검정색 정장을 차려입고 혼신의 힘을 다해 첼로를 연주했다.
전날 그 자리에서 폭탄에 맞아 죽어간 22명을 기리는 음악이라고 하였다.
사방에서 기관총 소리와 박격포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동요하지 않았다.
다리 사이에 첼로를 끼고 묵묵히 한 음 한 음 켜면서 연주를 했다.
무려 22일 동안이나 그랬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정신이 나갔다고 했다.
전쟁터에서 웬 음악이냐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총질을 하는 그들이 이상한 것 아닌가요?
사라예보에 포격을 가하다니 그들이 미친 것 아니냐고요?”라고 반문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음악가들이 하나씩 스마일로비치에게 합류하였다.
그들이 연주한 음악은 군악대의 음악이 아니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음악도 아니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의 조용한 곡이었다.
군인들과 민병대원들은 총소리와 박격포 소리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지만 스마일로비치와 연주자들은 음악으로 자신들의 소리를 냈다.
“우리는 전투원이 아니다. 희생양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인간이다. 결함이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사랑을 갈망하는 그런 인간일 뿐이다.”
총은 강하다.
박격포도 강하다.
그러나 음악은 그것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
사라예보는 그런 음악을 가진 도시이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연주 https://youtu.be/74weGNYbhYw>
<보스니아 내전 https://youtu.be/qUP6TMkLk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