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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주곡이 주인공의 노래보다 더 위대할 수 있다

by 박은석


연극 공연을 보면 중간에 두꺼운 천으로 된 가림막이 천정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갈 때가 있다.

그러면 무대 배경이 달라진다.

그렇게 막이 내려온 횟수를 따라서 1막이니 2막이니 하는 구분을 한다.

막이 내려오면 배우들은 분장을 고치기도 하고 물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쉬기도 한다.

그 순간만큼은 관객들의 눈을 피해 있는 것이다.

막이 올라가면 다시 무대로 뛰어가서 준비한 연기를 펼쳐야 한다.

관객들 입장에서도 막이 내려오면 기지개를 켜기도 하고 함께 온 일행과 이야기도 나눈다.

잔뜩 숨죽이며 바라보았던 연극에서 잠시 쉴 틈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막이 한 번 내려가면 공연의 분위기가 깨질 수 있다.

준비 상태에 따라서 막이 올라가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간혹 막이 내리고 올라가는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서 사회자가 등장해서 우스갯소리도 하고 노래도 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기도 한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유명세를 타기 전에 이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서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었다고 한다.

물론 그의 주 무대는 연극이 아니라 콘서트나 축제의 장소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한 타임의 공연이 끝나고 다음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데 출연진의 준비가 늦어질 수 있다.

그럴 때 이 막간의 시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날의 콘서트나 축제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

간혹 이 막간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올라온 무명의 인물이 삽시간에 전국구 스타가 되기도 한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일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오페라나 뮤지컬 같은 공연에서는 이 막간의 시간에 가사가 없는 순수 악기로만 연주되는 연주곡이 흘러나온다.

막 사이에 연주되는 곡이라고 해서 ‘간주곡’이라고 불린다.

가수가 부르는 것도 아니고 가사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관객들은 간주곡을 단순한 배경음악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간주곡이 극 전체의 분위기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마치 막간의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등장한 사회자가 대단한 인기를 차지해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탈리아 작곡가인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그런 작품을 썼다.

아마 본인도 오페라를 작곡할 때 간주곡이 대단한 유명세를 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스카니의 오페라 곡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라는 작품이 그랬다.

작품의 내용은 그다지 교훈적이지 않다.

시골 남녀들 간의 사랑과 불륜 그리고 그로 인한 복수와 결투로 이어지는 죽음을 담고 있다.

제목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라는 이탈리아어로 ‘시골 기사’라는 뜻을 지닌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남자이면서도 부인을 버리고 옛 연인과 바람을 피우다 들키고, 기사도를 앞세워 연인의 남편과 결투를 하다 죽는 우스꽝스러운 내용이다.

당시 그런 세태가 유행했었나 보다.




오페라의 내용은 그저 그런데 마지막 장면 전에 나오는 간주곡이 정말 죽인다.

조용한 이탈리아의 농촌 풍경을 떠오르게 하는 선율이 이어진다.

결투 장소로 가고 있는 내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3분 30초 정도의 간주곡이 끝나면 총성이 울린다.

결투가 끝난 것이다.

그리고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오면서 오페라의 막이 내린다.

너무나 숨 가쁘게 진행된다.

죄지은 놈은 죽어야 한다는 심판이 내려지는 것 같다.

그러나 그전에 잠시 침묵의 시간이 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전주곡은 그 순간을 포착한 것 같다.

큰일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한 순간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큰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간주곡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다.

주인공이 부르는 아리아에만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간주곡이 아리아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

작은 일이 큰일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카발레리라 루스티카나 간주곡이 그 사실을 알려준다.


++ 정명훈 선생이 지휘한 카발레리라 루스티카나 영상이 있어서 올립니다.

https://youtu.be/K8YXU0ZuE_k


간주곡이 주인공의 노래보다 더 위대할 수 있다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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