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은 순진했던 한 사람이 어떻게 파멸해가는지 잘 보여준다.
19세기 초 이탈리아 세비야 지방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배경과 등장인물들이 겪는 사건만 바꿔보면 오늘날 나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아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상연되는 오페라가 된 것 같다.
문학으로 치자면 명품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문학을 위대하게 여기는 이유도 이와 같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사람이 읽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엮여 있으며 그 사건들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뭐 저러냐?’라고 인상을 찡그리다가도 ‘나도 저 상황에서는 저랬겠다.’라는 공감을 갖게 한다.
선한 인물이 등장하면 그를 응원하면서 내 속에 있는 선한 마음이 발동을 한다.
반면에 악한 등장인물이 등장하면 그를 저주하면서 내 속에 있는 악한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덜컥한다.
<카르멘>의 주인공은 집시 여인 카르멘일 수도 있고 하사관 돈 호세일 수도 있다.
카르멘은 법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돈 호세는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질서와 규범을 지키며 살아온 인물이다.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이 돈 호세와 같은 삶을 산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아왔다.
가정에서는 부모형제들로부터 가정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사회에서는 선생님과 친구, 선후배들로부터 우리가 속한 사회를 잘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돈 호세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나라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머지않아 결혼할 사랑하는 사람 미카엘라도 있다.
그녀와의 결혼도 그 이후의 삶도 돈 호세가 소중히 여기는 질서와 규범을 지키는 일이다.
그런데 돈 호세의 인생에 카르멘이라는 여인이 뛰어들었다.
잔잔한 연못에 돌멩이가 던져진 것 같았다.
넓은 연못에 돌멩이 하나가 떨어진들 그게 무슨 영향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일단 돌멩이가 던져지면 그 파장은 연못 전체로 퍼져간다.
그것도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두 번 세 번 네 번 퍼지는 파장이다.
돈 호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냥 그렇고 그런 담배공장에 다니는 여인 카르멘을 봤다.
그다음에는 공장에서 싸움질을 하다가 붙들린 형편없는 이인 카르멘을 봤다.
형편없는 여자라고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카르멘이 노래를 부르고 꽃을 던져주자 돈 호세의 마음이 달라졌다.
그렇고 그런 여자 중의 하나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뿐인 여자로 카르멘을 봤다.
카르멘이 자기를 풀어달라고 하자 카르멘을 풀어줬다.
카르멘이 군대에 복귀하지 말라고 하자 복귀하지 않았다.
카르멘이 돈 호세의 인생 전부가 되었다.
돈 호세는 자신의 삶이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카르멘이 아니라 미카엘라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고향에 있는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속상해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지식이 감정을 이기지는 못하였다.
카르멘과의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탈영병이 되었다.
밀수꾼들과 한 패거리가 되었다.
카르멘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결투도 서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바치면 카르멘을 차지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카르멘은 더 멀리 달아나기만 했다.
카르멘이 부른 노래처럼 카르멘과의 사랑은 날아가는 새와 같았다.
날아가는 새를 잡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돈 호세는 잡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 순간 돈 호세의 삶이 망가졌다.
내 삶도 돈 호세와 같다.
굳이 잡을 필요도 없는 것인데 그것을 잡아서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순간 삶이 망가진다.
<카르멘> 중 하바네라,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 (Habanera,https://youtu.be/BXqMAe4H8P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