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문외한이 내가 가끔 관람하는 음악회가 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이다.
해마다 1월 1일 정오에 이탈리아 비엔나에서 열리는 음악회인데 티켓을 구하는 것조차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당연히 나는 텔레비전에서 중계했던 영상을 다운받아서 관람한다.
현장의 감동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집에서 나 혼자만을 위한 음악회의 시간으로 삼는다.
피곤한 몸으로 집에 왔을 때 영화나 한 편 볼까 하다가 복잡한 스토리를 따라가느라 더 피곤할 것 같을 때가 있다.
책을 읽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빈 필하모닉의 신년음악회 영상을 시청한다.
틀어 놓고 가만히 멍때리듯이 앉아있으면 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영상을 다운받아 놨기 때문에 10편 정도의 영상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를 클릭하면 된다.
오늘은 2022년의 공연을 클릭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지휘자가 연주한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비엔나 출신의 걸출한 음악가 요한 스트라우스와 그의 가족들이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는 익숙한 곡이 나오면 한번 쳐다보고 생소한 곡이 나오면 배경음악으로 삼는 정도이다.
그래도 여러 번 영상을 보다 보니까 익숙한 곡이 하나씩 늘어가는 재미가 있다.
왈츠곡이 나오면 어느 궁정에서 멋진 왕자와 예쁜 공주가 손을 맞잡고 춤추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고 라데츠키 행진곡이 나오면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마음이 일기도 한다.
텔레비전으로 중계했던 영상이 좋은 이유는 연주되는 곡에 대한 해설과 그에 따른 에피소드들을 자막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음악에 대해서 전혀 관심 없던 나 같은 사람조차도 ‘한번 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한 번 들으면 두 번 듣고 싶고 두 번 들으면 그다음에는 습관이 된다.
내가 그렇게 되었다.
일요일이라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이어진 교회에서의 일들을 다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온 상태였다.
몸을 긴장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엔가 집중하면서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넷플릭스에서 한두 편의 영화를 틀어보다가 빠져나왔다.
오늘 같은 날은 복잡한 이야기가 얽혀 있는 영상은 보기가 싫다.
그래서 골라잡은 것이 2022년 빈 신년음악회 영상이었다.
연주자들이 무대 위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음을 잡고 있었다.
잠시 후에 청중들의 박수와 함께 지휘자가 등장했다.
그리고 음악이 연주되었다.
음악에 대한 해설이 자막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빈 필하모닉의 유래와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다음에는 지휘자를 소개하는 자막이 나왔다.
이력이 찬란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연주되고 있는 곡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자막 덕분에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다.
그런데 음악 외에 다른 자막들도 나왔다.
오히려 그 자막들이 훨씬 많이, 훨씬 오랫동안 텔레비전 모니터 하단을 장식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 오미클론에 대한 자막이 나왔다.
대만에서는 벌써 많은 나왔다고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식당에서는 4명까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자막도 나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연장한다는 정부 방침도 소개하고 있었다.
백신 접종에 대한 안내도 있었다.
1차 접종한 사람이 전 국민의 몇 퍼센트였는지, 4차 접종을 받으라는 안내도 있었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년에 내 주변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살아가고 있다.
그때는 지금처럼 생활하는 게 축복이고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삶이 축복이고 기적인 줄도 모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