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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13. 2023

내 마음의 얼룩을 지워줄 세탁소가 있다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다가 김칫국물이 옷에 튀었다.

하얀 와이셔츠였기에 붉은 자국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남들이 보면 칠칠맞다고 하기 딱 좋은 얼룩이다.

얼른 세면대로 가서 수돗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옷을 비볐다.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다.

물 몇 방울 떨어뜨려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제대로 세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그날 오후는 칠칠맞은 채로 지냈다.

집에 와서 옷을 벗고 빨래통에 넣었다.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굳이 그런 걸 말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어차피 세탁기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흔적 없이 사라질 얼룩이다.

한 시간 넘게 세탁기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건조기에 들어갔다가 나왔더니 와이셔츠에 묻었던 얼룩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역시 얼룩을 지우는 데는 세탁이 최고다.

물 몇 방울 떨어뜨려서 얼룩진 부분을 비벼댈 필요가 없다.

빨리 세탁기에 돌리는 게 최고다.




나이를 먹어가니까 내 몸에도 얼룩이 묻는다.

물사마귀들도 점들도 얼굴 여기저기에 생겼다.

전에 두어 번 물사마귀를 제거하고 점도 뺐다.

그런데 또 생겨났다.

그것들이 자꾸 신경에 거슬린다.

깨끗하게 지우고 싶다.

언제 날을 잡아서 병원에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피부과든 성형외과든 한 번은 다녀와야겠다.

깨끗해진 내 얼굴을 보고 싶다.

페이스북에서 종종 물사마귀 제거 연고를 구입하라는 광고가 뜬다.

광고 영상을 보면 그 연고를 몇 번 바르면 물사마귀나 점이 감쪽같이 없어진다고 한다.

마음이 훅 쏠린다.

병원에 가서 레이저 바늘이 꾹 찌르는 그 불편함을 참는 것보다 연고 몇 번 바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아내에게 살짝 내 마음을 내비쳤더니 절대로 연고를 사지 말라고 한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병원에 가야 깨끗하게 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아내의 말은 틀린 적이 없다.




옷의 얼룩은 세탁하면 뺄 수 있고 몸의 얼룩은 병원에 가면 뺄 수 있다.

그런데 또 다른 곳에도 얼룩이 생겼다.

바로 내 마음에.

마음에 생긴 얼룩은 눈에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게 얼룩인 줄도 몰랐다.

오래전부터 있었으니까 그게 내 마음의 일부분인 줄 알았다.

나는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얼룩이었다.

원래의 내 마음은 그 모습이 아니었다.

내 마음 위에 얼룩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마음을 그 얼룩이 덮어버리고 있었다.

그 얼룩에 가려서 내 마음은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주눅 들어 있었다.

누가 이 얼룩을 좀 빼주었으면 좋겠다.

그 얼룩은 내가 받은 상처 때문에 생겼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람들로부터 받은 거절감과 부정적인 말들, 나의 실수와 잘못들이 뭉치고 뭉쳐서 생긴 상처이다.

오랫동안 굳어서 내 마음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원래부터 그런 얼룩진 사람인 줄 알았다.




마음의 얼룩은 물 몇 방울 적시고 비빈다고 빠지지 않는다.

얼룩진 마음을 세탁기에 돌릴 수 없다.

병원에 가도 마음의 얼룩은 깨끗하게 뺄 수가 없다.

그냥 이대로 살아야 하나 체념하고 있을 때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에 가면 얼룩진 마음이 깨끗하게 된다고 한다.

물어 물어서 그곳에 가려고 한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을에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바닷물만큼 많은 눈물을 흘리다 보면 보인다고 한다.

바닷물에 푹 빠져서 옷을 입고 다닐 수 없을 때가 되면 보인다고 한다.

나를 날려버릴 듯한 거센 바람을 맞다 보면 보인다고 한다.

죽고 싶은 마음이지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보인다고 한다.

윤정은 작가가 먼저 그 세탁소에 다녀왔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세탁소를 소개해주고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은 들르는 세탁소이다.

언젠가 한번은 들러야 할 세탁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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