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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05. 2023

고전을 읽는 즐거움


어떤 책이든 읽다 보면 몇 개의 문장을 건지게 된다.

책 한 권에 한 문장만이라도 건진다면 책값은 충분히 한 셈이다.

그런데 고전은 한 권에 몇 문장만 얻는 게 아니라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모두 밑줄 긋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고전을 읽을 때는 나의 생각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의 현실과 고전이 쓰인 시대 사이에는 기나 긴 시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

아무리 내가 그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해도 다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살아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집에 살았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충만 알 뿐이다.

그러니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책의 내용 속으로 빠져들 필요가 있다.

천상천하에 오직 이 책과 나만 있다는 식으로 고전을 대하면 내가 고전 속에 등장하는 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순간이 온다.




고전을 읽을 때 내가 특히나 조심하는 게 있다.

그건 나의 종교적인 신념이다.

나의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내가 읽는 책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의 생각은 내가 믿는 종교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고전은 대부분 종교적인 내용을 가르친다.

여기서 내가 믿는 종교와 고전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

나의 종교적 신념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들이 고전에서는 너무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논어>도 그렇다.

<논어>의 내용 중에 상당 부분은 제사에 대한 내용이다.

그런데 내가 믿는 기독교에서는 사람에 대한 제사는 금한다.

우상숭배로 여긴다.

그러니 나의 가치관과 내가 읽는 책 사이에 가치관의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런 상태로는 고전을 읽을 수 없다.

충돌이 일어날 때는 어느 한 쪽이 양보해야 한다.

어쩌겠는가?

고전은 오래전에 쓰여서 바꿀 수 없으니 내가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논어>를 ‘유교’의 경전으로 보지 않고 2500년 전의 사람들이 가르쳐준 가르침이라고 보면 마음이 편하다.

<논어>에 제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제사 지내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왜 제사 지내는 일들이 많았을까?

그건 사람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간단한 질병에도 많이 죽었다.

그러니까 <논어>에서 장례나 제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 당시 그 시대의 사람들이 이 문제들을 중요하게 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고전을 보면 <논어>를 읽으면서 유교라는 종교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보인다.

2500년 전의 어느 집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 옛날 사람들이 거닐었던 길거리의 풍경이 마음속에 그려진다.

내가 그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여겨진다.

이것이 고전을 읽는 즐거움이다.




최근에 또 한 권의 <논어>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판덩(樊登)이라는 사람이다.

중국에서 4천만 명이 넘는 독서클럽 회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이다.

전에 그의 저서인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를 읽은 적이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책은 <나는 논어를 만나 행복해졌다>라는 책이다.

옛날 사람들은 <논어>를 읽을 때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정신을 집중하면서 읽었을 것이다.

<논어>를 경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뜻을 헤아리느라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읽지는 못한다.

일단 자세를 반듯하게 하는 것조차 힘들다.

축 늘어진 채로 책을 읽는다.

정신 집중도 거의 하지 못한다.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이라는 식으로 읽는다.

이 책 한 권에서 한 문장만 건지면 본전은 뽑는다.

첫 장을 넘기면서 이미 본전을 뽑았다.

앞으로는 덤이다.

이것이 고전을 읽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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