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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 카페가 하나 있다면

by 박은석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이 안정감을 줄 때가 더 많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굉장히 혼란스러울 것이다.

마치 이 우주 속에서 나의 존재 의미가 사라져버린 것 같은 기분도 들 것이다.

내가 아무 일을 안 해도 세상은 잘 돌아가니까 결국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마치 세상에서 내가 내침을 당한 것 같을 것이다.

소속감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반복되는 일상생활이 있다는 게 훨씬 낫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존재케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일 때가 있다.

잠시 일상을 떠나고 싶고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휴가를 다녀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잠시 머리를 식히며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된 것이다.




1주일 동안의 휴가를 얻고 길을 나섰는데 길이 꽉 막혀 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빨리 간다고 해서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느긋하게 음악이나 들으면서 기다릴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할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길은 빨리 지나가고 싶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좋은 것도 아니고 늦게 간다고 해서 더 나쁜 것도 아닌데 일단은 빨리 가고 싶다.

그런데 길이 막혀서 꼼짝을 못 하는 상태다.

저 앞에서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고 수습하고 통행이 재개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 길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한다.

잠시 망설인다.

자동차의 연료 게이지를 보니 밑바닥으로 내려가 있다.

이건 선택이 아니다.

차를 돌린다.

주유소를 찾아야 한다.

그 흔하던 주유소들이 보이지 않는다.

배도 고프다.

그 많이 보이던 가게들도 안 보인다.

길 한가운데서 미아가 된 기분이다.




마음이 초조해진다.

괜히 길을 나섰다는 자책이 든다.

차라리 회사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는 후회도 든다.

자동차 연료도 간당간당하고 고픈 배도 간당간당할 때 저 앞에서 카페가 하나 보인다.

다행이다.

안심이 든다.

카페 이름이 <세상 끝의 카페>이다.

세상 끝에 서 있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다.

적어도 그날 그 시간까지는 세상 끝에 서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일단 주문을 해야 한다.

메뉴를 들춰보았다.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글이 보인다.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충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신경을 끄고 넘어가려고 하는데 눈이 다시 그 글에 가서 박힌다.

갑자기 글자가 달라져 보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은 왜 여기 있습니까?’였는데 ‘나는 왜 여기 있는가?’로 바뀌어 있다.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수학문제 앞에 앉은 학생처럼 이 글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은 자동차의 기름을 채우는 게 아니다.

고픈 배를 음식으로 채우는 게 아니다.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텅 비어버린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 잘 왔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아무 데로나 가서는 안 된다.

한 번 택한 길로 끝까지 가게 되기 때문이다.

돌아와서 다시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길 따라서 세상 끝까지 가야 한다.

물론 중간중간에 갈래길이 나온다.

그중에서 하나의 길을 택해서 또 갈 것이다.

그렇게 세상 끝까지 간다.

그 끝에는 ‘죽음’이 나를 맞이한다.

그때 ‘충만한 삶을 살았다’는 마음이 들까? 아니면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 잠시 존 스트레레키가 운영하는 <세상 끝의 카페>에 앉아 이 문제를 풀어보자.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그 정도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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