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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17. 2023

사는 게 꼭 이어달리기 하는 것 같다

    

  

달리기를 잘했었다.

학교에 가기 전부터 달리기를 했다.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출발선을 그어놓고 “준비, 땅!” 하면 뛰었다.

지는 게 싫었다.

지는 법을 몰랐다.

남들보다 빨리 뛰는 것만 알았다.

친구들보다 키가 조금 컸던 게 도움이 되었는지 다리가 조금 길었던 게 도움이 되었는지 어쨌든 도착선에 “1등!”을 외치며 들어왔다.

국민학교에 입학했더니 우리 동네 친구들 외에 다른 동네 친구들도 있었다.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을 텐데 우리 동네와 저쪽 동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가을이 되면 운동회를 열었는데 선생님들은 동네별로 이어달리기팀을 만드셨다.

순식간에 동네 대항전이 되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동네 대표선수를 뽑아서 연습을 시켰다.

나도 대표선수가 되었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이어달리기는 두 가지를 잘해야 한다.

잘 뛰는 것과 바통을 잘 주고받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잘해야 한다.




잘 뛰는 것은 자신 있었다.

걱정은 항상 바통을 잘 주고받는 것에 있었다.

내가 바통을 잘 건네주는 것도 중요했다.

내가 바통을 잘 받는 것도 중요했다.

제자리에서 바통을 주고받으면 안전하게 주고받을 수는 있지만 달리기의 흐름이 끊긴다.

이어달리기는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경기이다.

나에게 바통을 건네 줄 선수가 바통 터치 구간에 들어오면 그보다 조금 앞에서 그와 함께 달려야 했다.

오른팔을 뒤로 쫙 뻗고 그의 속도와 보조를 맞추면서 뛰어야 했다.

내가 너무 빨리 달리면 나에게 바통을 전해주지 못한다.

내가 너무 느리게 달리면 바통을 건네주는 순간 둘이 충돌할 수도 있다.

이 둘 사이에서 적당한 속도를 내는 게 실력이다.

흐름이 끊기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바통을 주고받아야 한다.

어차피 1학년보다는 2학년이 잘 뛴다.

관건은 실수하지 않고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바통을 주고받는 데 있다.




우리 동네 1학년 아이가 뒤처졌을 때는 안타깝다.

그러나 2학년 아이가 잘 뛰어주면 역전할 수 있다.

3학년 아이가 잘 뛰어도 4학년 아이에게 바통을 넘겨주다가 바통을 떨어뜨리면 그 경기는 이길 수 없다.

바통이 떨어지는 순간 게임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바통이 6학년 아이에게 전해질 때까지 모두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뛰고 조금 더 못 뛰는 것은 단기간에 바꿀 수 없다.

타고난 신체적 차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바통을 주고받는 것은 연습할수록 실력이 좋아진다.

그것만이라도 잘하면 우승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잘 뛰면 더없이 좋겠지만 내가 잘 못 뛰어도 그다음 선수가 잘 뛰어주면 된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내 바통을 다음 선수에게 잘 전해주는 데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리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고 결과는 하늘에 달려 있다.




오십 년을 살다 보니 사는 게 꼭 이어달리기하는 것 같다.

혼자 뛰는 인생이 아니라 여럿이서 같이 뛰는 인생이다.

철없을 때는 나 혼자만 잘 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같이 잘 뛰어야 하는 거다.

나 혼자서 끝까지 뛰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나보다 먼저 뛰어준 사람이 있고 나는 그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내가 뛰어야 할 구간을 뛰는 것이다.

그다음 구간은 나에게서 바통을 전해받은 이가 뛰는 것이다.

집안에서는 아버지가 나에게 바통을 전해주셨고 사무실에서는 나보다 먼저 이곳에 있다가 간 사람이 나에게 바통을 전해주었다.

지금은 내가 그 바통을 꼭 쥐고 있지만 언젠가 나도 바통을 넘겨주어야 한다.

집안에서는 내 아이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될 테고, 사무실에서는 내 바통을 받으려고 준비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그때까지 나는 내 바통을 손에 쥐고 최선을 다해서 뛰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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