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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16. 2023

퀘이커 퀘스천에 대한 생각


퀘이커 퀘스천(Quaker Question)이란 게 있다.

기독교 종파 중에서 굉장히 순수한 신앙을 지향하는 퀘이커라는 종파가 있다.

그들은 마치 시계가 멈춰버린 것처럼 21세기를 살아가면서도 17세기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면서 살고 있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고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시대인데도 여전히 마차를 타고 다닌다.

화려하고 예쁜 옷들이 넘쳐나는 시대인데도 여전히 새까만 옷을 입고 다닌다.

문명의 발전을 달갑지 않게 여기며 철저히 신앙 중심적인 생활을 한다.

그러다 보니까 기독교 내에서도 왕따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이커교도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면서 살고 있다.

퀘이커 교도들은 매우 독특한 모임이기 때문에 새로운 신자를 받아들일 때도 무척 조심스럽다.

그 새로운 신자가 어떤 사람인지 철저하게 알아보려고 한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퀘이커 퀘스천이라는 질문이 탄생하게 되었다.




퀘이커 퀘스천은 한 사람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중요한 사항들을 물어보는 4가지 질문이다.

이 4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으면 그 사람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 공동체에서도 신입회원을 맞아들일 때 퀘이커 퀘스천을 사용한다.

나는 스무 살 때 대학 동아리에서 MT를 갔을 때 이 퀘이커 퀘스천을 처음 접했다.

그 동아리의 가입 의식 중의 하나가 바로 퀘이커 퀘스천에 대한 답을 하는 것이었다.

학기 초에 떠난 MT였기 때문에 신입생들에 대한 퀘이커 퀘스천을 묻고 답하느라고 밤을 꼬박 새웠다.

저녁식사 후에 신입생들에 대한 퀘이커 퀘스천을 시작했는데 모두 끝났을 때는 새벽 네다섯 시가 되었던 것 같다.

나도 내 차례가 오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고심했었던 기억이 있다.

신기하게도 그날 퀘이커 퀘스천을 끝내고 났더니 그 동아리의 회원들이 마치 오래된 가족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그때 우리가 나눴던 퀘이커 퀘스천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당신이 기억하는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집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집이 도시에 있었는지 시골에 있었는지 집안 환경이 넉넉했는지 어려웠는지가 다 드러난다.

둘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추웠던 때는 언제인가?

추운 것은 기온이 내려간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음이 추웠을 때를 묻는 질문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면 그가 겪었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그 아픔들을 견뎌내면서 그가 어떤 성격의 사람이 되었는지 알 수가 있다.

셋째,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따뜻했던 때는 언제인가?

물론 마음이 따뜻했던 경험이다.

이 대답을 들으면 그가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가장 따뜻한 것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3가지의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고 나서 던지는 4번째 질문이 있다.




퀘이커가 종교 모임이기 때문에 마지막 질문은 종교적인 대답을 요구한다.

넷째 질문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때가 언제였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다 보면 그가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이 건강한지 건강하지 않은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퀘이커 퀘스천은 정말 단순한 질문이다.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쉬운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동안에 자신이 누구인지 잘 설명해 준다.

고작 4가지의 질문인데 그게 뭐 대단한 것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고작 4가지의 질문이지만 이 질문은 그 사람을 알아가는 열쇠와 같은 질문이다.

한마디 말을 듣더라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하물며 4가지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을 알고 알고 알고 또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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