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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25. 2023

나의 냄새를 찾아가는 길이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외국인들은 우리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한다.

우리가 마늘을 많이 먹어서 마늘 냄새가 몸에 밴 듯하다.

한국음식에서 마늘이 빠진다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곰이 21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어서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신화의 내용이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도 마늘 때문일 것이다.

쑥은 어쩌다 한 번 먹지만 마늘은 매일 먹는다.

마늘을 먹은 우리의 어머니들이 우리를 낳았으니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마늘향을 타고났을 것이다.

서양인들이 우리에게 마늘향이 난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말이 아니다.

어쩌면 마늘향이 나야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중국인, 일본인과 함께 있으며 서양인들은 누가 한국인인지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유럽 사람들을 보면서 영국인인지 프랑스인인지 독일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눈에 보이는 겉모양으로는 알 수 없지만 코끝에 전해지는 향기로는 알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 가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와 함께 매우 독특한 냄새가 난다.

땅에서 나는 것인지 사람에게서 나는 것인지 모르지만 이상야릇한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진다.

그 냄새는 내가 지금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코가 예민한 사람들은 그 냄새만 맡아도 자신이 인도네시아에 왔는지 태국에 왔는지 필리핀에 왔는지 알 수 있다.

냄새만 맡아도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을 앞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각 나라에는 그 나라만의 냄새가 있기 때문이다.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은 그 냄새에 싸여 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냄새가 그 사람의 몸에, 머리에, 마음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냄새가 싫다고 해서 냄새를 떠날 수 없다.

우리는 냄새에 싸여 살아간다.

처음 맡는 냄새는 역겨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냄새는 익숙하게 되고 익숙한 냄새를 맡게 되면 반갑다.




냄새가 별것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냄새는 별것이 맞다.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라고 노래를 불렀던 가수는 꽃 냄새를 맡을 때마다 그 사람을 생각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서 꼬질꼬질한 냄새가 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루 동안 살아온 삶의 현장이 꼬질꼬질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에서 상큼한 향기가 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루 동안 상큼한 냄새가 나는 곳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어디에 있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달라진다.

향을 쌌던 종이에서는 향냄새가 나고 똥을 쌌던 종이에서는 똥냄새가 나는 게 당연하다.

종이는 향도 아니고 똥도 아니다.

향을 쌌던 종이와 똥을 쌌던 종이가 다른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안에 무엇을 샀었느냐에 따라 냄새가 달라진다.

냄새로 종이를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는 늘 냄새로 평가한다.

냄새로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 하는데 냄새로 사람을 평가한다.




나를 둘러싼 것들로부터 나에게 스며든 냄새가 나의 냄새일 수는 없다.

나의 냄새는 나에게서 발산해서 밖으로 나가는 냄새여야 한다.

내가 없을 때는 이런 냄새가 났을지라도 내가 등장하는 순간 냄새가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냄새가 강하면 그게 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나의 냄새를 발산하기도 전에 나는 벌써 그 분위기의 냄새에 질식해 버렸다.

나의 향기를 뿜어내기도 전에 상대방이 내뿜는 냄새에 갇혀 버렸다.

그래서 그 냄새가 마치 내 냄새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내 속에서는 자꾸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이건 나의 냄새가 아니라고 자꾸 알려주었다.

나의 냄새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맡을 수 없는 나만의 냄새가 있다고 했다.

그 냄새가 나의 글이 되기도 하고 그림이 되기도 하고 음악이 되기도 한다.

그 냄새가 나의 삶이 된다.

그 냄새를 찾아가는 길이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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