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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28. 2023

우리는 모두 의자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고 있다.

사무실에 출근한 후에 퇴근할 때까지 의자에서 벗어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화장실에 갈 때? 그때도 앉아 있다.

사람을 만날 때? 그때도 잠깐만 서 있을 뿐이지 곧 의자에 앉는다.

점심식사할 때? 당연히 의자에 앉아 있다.

출퇴근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어디 앉을자리가 없나 살핀다.

물론 자동차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처음부터 의자에 앉아 있다.

집에 와서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는 의자에 앉아 있다.

하루 중에 길을 걸어갈 때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의자에 앉아 있다.

우리 집에 의자가 몇 개인가 세어 보니 10개가 넘는다.

각 방마다 의자가 있고 밖에 나갈 때 사용하려고 장만한 접이용 의자도 있다.

식구는 4명인데 식구 숫자보다 의자 숫자가 두 배나 더 많다.

우리 집에만 의자가 많은 게 아니라 다른 집에도 사람 숫자보다 의자가 많을 것이다.




아기들은 엄마가 안고 업고 있으니까 의자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집 안에서는 보행기라는 의자가 있고 집 밖으로 나갈 때는 유모차라는 의자가 있다.

자동차를 탈 때는 카시트라는 의자가 있고 식당이나 카페에서 들어서면 아기 의자가 있다.

아기가 자라서 학교에 가면 학생용 의자가 있고, 성인이 되어 회사에 가면 사무용 의자가 있다.

몸이 커지는 것에 맞춰서 의자도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갈아탄다.

그러다가 우리의 나이가 많아지거나 다쳐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휠체어라는 의자가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자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의자는 한 번 우리를 잡은 후에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휴게실에는 앉아서 쉬라는 의자가 있고 은행이나 병원에서는 앉아서 기다리라는 의자가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의자가 있다.

우리는 의자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의자는 우리 삶에 익숙하고 오랜 친구 같다.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존재한 것 같다.

하지만 의자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대사회에서는 등받이가 없는 파우치나 벤치 같은 형태로 의자가 존재했었다.

그 의자에 앉았던 사람들은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권력자 같은 존재들이었다.

의자에 앉느냐 못 앉느냐에 따라 신분의 높낮이가 뚜렷했었다.

의자가 대중들에게 보급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였다.

공장에서는 같은 시간 안에 물건을 더 많이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 결과 일의 분업화가 이루어졌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하면 되었다.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는 것보다 고정된 한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공장노동자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만들 장치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의자였다.

의자는 편한 듯하면서도 노동자들을 구속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20세기에 와서는 작업환경이 좀 더 세분화되었고 사무노동자들이 많아졌다.

그들도 한자리에 앉힐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사무업무를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에 사람들은 ‘시간은 곧 돈’이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다.

더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더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게 가능하려면 일단 사람들을 앉혀야 했다.

사무실에 사람 숫자만큼 의자가 많아진 이유이다.

공장노동자가 사무실 노동자가 되었다고 해서 의자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의자에 더 깊숙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했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누군가 내 의자를 치워버리면 큰일 난다.

의자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그 무심한 얼굴 안에 무시무시한 권력을 감추고 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의자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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