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읽기와 같은 엉뚱한 것에 경쟁을 하고 있다

by 박은석


나는 엉뚱한 일에 경쟁심을 갖는다.

남들이 안 하는 일을 굳이 하려고 하지 않나, 고개 푹 숙이고 눈 돌리고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도 괜히 손을 들고 내가 여기 있다고 증명한다.

축구를 할 때도 선수들만 있을 때는 설렁설렁하지만 관중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슬라이딩 태클을 하고 오버헤드킥을 날린다.

공이 발에 맞든 안 맞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폼만 있으면 된다.

그렇게 있는 대로 똥폼을 잡는다.

나보다 더 멋진 폼을 잡는 사람을 용납하지 못한다.

오지랖이다.

자기 잘난 척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이런 게 남을 위한 희생이 되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지도력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순수한 마음으로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보다 더 희생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희생하는 데도 경쟁심이 발동을 한다.

아내는 나에게 제발 나서지 말라고 하는데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내 멋에 취해서 산다.




4층짜리 빌라의 우리 집 라인에는 모두 여덟 가구가 산다.

얼마 안 되는 이웃이지만 솔직히 누가 누군지 모른다.

102호와 202호의 사람들은 나보다 먼저 이곳에 살고 있었다.

나머지는 나보다 늦게 왔는데 인사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몹시도 불편하다.

옛날처럼 꼬박꼬박 반상회를 했다면 아마 내가 반장이 되고도 남았을 거다.

어제오늘 비가 많이 오길래 역시나 계단에 물이 흥건했다.

2층 외벽 방수 실리콘이 낡아서 그럴 것이다.

이게 몇 년은 되었는데 아무도 얘기를 안 한다.

안 되겠다 싶어서 오늘 맘먹고 관리소장에게 얘기를 했다.

날 좋을 때 방수 실리콘 발라달라고.

계단의 전구가 깜빡거려도 남들은 눈에 거슬리지 않는가 보다.

나는 그게 못 견디게 싫다.

연세 많은 우리 경비 아저씨에게 말하기는 싫어서 내가 그냥 교체해 버린다.

가끔은 이 빌라의 할머니들이 나를 새로 온 관리사무소 직원인 줄 안다.




나의 이 오지랖 같은 경쟁심이 열흘 전에 엉뚱한 곳에서 또 발동을 했다.

책읽기에서였다.

작년보다 올해 책을 더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연초에는 없었던 욕심인데 한해의 절반을 넘기다 보니까 그런 욕심도 생겼다.

8월 1일에 어쩌다가 책 2권을 읽었다.

가끔 그런 날도 있다.

그런데 2일에는 3권을 읽었다.

하. 이것 봐라. 되네!

3일에도 2권을 읽었다.

그러자 슬슬 경쟁심이 생겼다.

8월 한 달 동안 하루에 책 2권 이상 읽기! 정말 갑작스럽게 엉뚱한 목표를 세웠다.

목표를 세우면 그다음은 무조건 돌격이다.

사람이란 존재가 참 이상하다.

목표가 없을 때는 그냥저냥 사는 것 같은데 목표가 생기면 저돌적이 된다.

없던 힘도 생긴다.

책읽기에서 그 힘을 다시 경험하고 있다.

오늘까지 11일이 지나는 동안에 23권의 책을 읽었다! 신기하다.

재미있다.

매일 2권의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브런치 스토리에 꾸준히 1년 200권 책읽기, 1년 300권 책읽기에 대한 중간보고를 한다.

솔직히 나 잘났다고 자랑하는 것 같다.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멋에 취해서 자랑질을 한다.

“지난달에 나 몇 권 읽었소!” 자랑을 한다.

경쟁심을 돋운다.

내 글을 읽고 누군가는 나에게 도전할 것이라 믿는다.

그 도전을 기꺼이 받아주고 나도 그에게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책을 읽을 것이다.

20여 년 전에 내가 아는 어떤 형님이 1년에 400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길래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내가 그 기록에 도전할 것 같다.

나는 경쟁심이 강하고 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그 형님의 기록을 깨고 싶다.

남들은 별 쓸데없는 곳에 힘을 쏟는다고 할 것이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훨씬 나을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책읽기와 같은 엉뚱한 것에 경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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