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때 해보고 싶었던 일들과 한 일들

by 박은석


여름휴가를 앞두고 나름대로 계획들을 세우겠지.

나도 그랬다.

의미 없이 흘려보내는 시간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그해 여름에는 뭔가를 했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올해 여름휴가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고3인 딸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아내와 내가 동시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면 안 되었다.

누군가는 집을 지키면서 딸아이가 학원과 독서실에 오가는 것을 챙겨줘야 했다.

아내와 휴가를 따로 가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다음으로는 내 개인적인 공부가 있었다.

올 하반기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논문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늦게 공부한 것이니까 빨리 끝마쳐야 한다.

지도교수를 만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전에 어느 정도 글을 써야 했다.

여름휴가 때가 글쓰기에 제일 알맞은 시간이었다.

일단은 이 2가지 일은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이 휴가 기간에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 자리 잡았다.




나 같은 사람들은 직업의 특성상 휴가를 연중에 쓸 수가 없다.

여름에 몰아서 간다.

연가를 한꺼번에 쓰는 셈이다.

나에게 해당되는 시간은 1년에 13일이다.

보통의 직장인들에 비하면 부족한 일수이다.

아쉽기도 하지만 이 직종에는 나보다 더 적은 시간밖에 할애받지 못하는 이들도 많으니까 불만은 없다.

시간이 많이 주어졌다고 해서 휴가를 잘 보낼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시간의 무게가 달라질 것이다.

한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도 있다.

반면에 긴 시간이었지만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13일을 반으로 나눠서 한 주간은 논문을 쓰는 데 전념하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나온 배를 집어넣기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할 겸 탄천을 걷기로 했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걷다 보면 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된다.




본격적으로 이번 여름휴가 기간에 해보고 싶은 일이 4가지 있었다.

첫 번째 계획은 하루에 책 2권씩 읽기였다.

이것은 8월에 들어서면서 이미 세운 계획인데 휴가 기간에 쭉 이어서 진행해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휴가 때는 책 읽기보다 다른 것에 에너지를 많이 쏟았었다.

그런데 이번 휴가 때는 책 읽기에 신경을 많이 썼다.

하루하루 성공하는 기쁨을 누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2권을 못 읽은 날도 있었지만 어쨌든 13일 동안 26권의 책을 읽었다.

성공했다.

두 번째 계획은 지리산을 종주하는 것이었다.

11년 전에 한 번 종주한 경험이 있다.

그때 1박 2일 동안 걸으면서 얻은 게 많았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깊은 힐링의 시간도 가졌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고 싶었다.

나의 한계에 도전도 하면서 켜켜이 쌓인 삶의 찌꺼기들도 씻고 싶었다.

어쨌든 11년 만의 지리산 종주! 성공했다.




세 번째 계획과 네 번째 계획은 내가 사는 지역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일단 세 번째 계획은 우리 집에서 시작해서 탄천길을 따라 한강이 보이는 서울 잠실까지 걷는 것이다.

한강까지는 25㎞ 정도 된다.

내 목표는 한강이 아니라 잠실야구장이다.

평지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으면 한 시간에 6㎞ 정도 속도가 나온다.

쉬지 않고 4시간을 걸으면 된다.

처음 시도 때는 2시간 걸었을 때 급한 전화가 오는 바람에 돌아와야 했다.

아쉬웠다.

다시 시간을 냈다.

성공했다.

네 번째 계획은 분당 끝에 있는 불곡산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남한산성까지 가는 것이다.

이것도 예전에 한 번 시도했었다.

그때는 7시간이 걸렸었다.

이번 여름휴가 때 다시 도전하려고 했다.

나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도전하지 못했다! 아쉽다.

날씨가 너무 덥다는 핑계, 몸이 찌뿌둥하다는 핑계 때문이었다.

이것만 성공했더라면 완벽한 여름휴가였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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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 미금역에서 3시간 42분 동안 걸어서 잠실야구장에 도착했다. 걷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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