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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우리나라
11년 만의 지리산 종주(1)
by
박은석
Aug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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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1년 만이다.
지리산 종주.
이번 휴가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 일이 끝나면 지리산에나 다녀오겠다고 했다.
계획대로 월요일에 일이 끝나자 부지런히 짐을 쌌다.
자신감에서였을까? 아니면 짧으면 1박 2일 길면 2박 3일이라고 여유를 부려서였을까? 그 정도면 어떤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괜한 자신감이었을까? 대충 짐을 쌌다.
대충 짐을 싸는 사람들의 특징은 비슷하다.
필요 없는 짐은 집어넣고 필요 있는 짐은 빼버린다.
보조배터리를 챙겼으니까 충분한데 충전 콘센트까지 챙겼다.
판초우의 하나면 됐는데 1회용 비옷까지 넣었다.
이런 사소한 차이가 배낭의 무게를 늘렸다.
반면에 사탕이나 오이 같은 간식은 챙기지 않았다.
평상시에도 간식은 잘 안 먹으니까.
나중에 엄청나게 후회를 했다.
산에 갈 때는 다른 사람들이 챙기는 것의 절반만이라도 간식거리를 챙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번 종주도 성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가는 길로 코스를 잡았다.
하산길은 일단 천왕봉을 찍고 나서 정하기로 했다.
체력이 받쳐주면 다시 성삼재로 돌아오는 왕복 코스도 해볼까 생각했다.
이것도 충분한 사전 계획이 없었으니까 했던 생각이다.
지리산은 그리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운동 삼아 지리산을 뛴다고 한다.
하루 만에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왕복한다고 한다.
무슨 임꺽정 같은 이야기인가 하지만 운동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있다고 한다.
나중에 택시를 탔을 때 왕복 종주 생각했다고 하니까 택시 기사님이 나에게 선수냐고 물어보셨다.
선수들이나 그렇게 하는 것이지 일반인들은 그렇게 하면 죽는단다.
어쨌거나 나의 지리산 종주는 시작되었다.
늦게 계획 잡는 바람에 연하천 대피소는 만원이고 할 수 없이 벽소령 대피소를 예약했다.
천왕봉에서의 일출 구경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완주로 족했다.
교통편이 애매해서 성삼재에는 오전 10시 20분에 도착했다.
몸 풀고 곧바로 출발.
100미터도 가기 전에 이번 산행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1시간 만에 노고단에 올랐는데 벌써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한가하게 경치를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벽소령 대피소까지 가야 했다.
7시간 정도 예상했다.
6시 전에 도착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미 대피소 예약을 끝낸 상태이니까.
지리산 종주는 대피소 예약이 필수이다.
반달가슴곰도 살고 있어서 야영은 금지이다.
산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 비박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목숨 걸고 그런 짓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고단을 통과해서 부지런히 걷는데 발걸음이 예상치 않았다.
배낭은 무겁고 날은 습하고 옷은 땀에 절었다.
그나마 충분히 물을 충분히 챙긴 것이 다행이고 휴게소에서 망설이다가 초코바 2개를 사 온 것이 큰 다행이었다.
점점 예상 시간과 멀어졌다.
연하천 대피소까지 오후 4시에 도착할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자주 쉬어야 했다.
연하천 대피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몇 번이나 생각했다.
연하천까지 도착하는 데 7시간 걸렸다.
벌써 저녁 5시가 넘었다.
물 몇 모금 마시고 또다시 길을 가는데 벽소령에서 전화가 왔다 어디까지 왔냐는 걱정 섞인 목소리다.
내가 길을 잃은 줄 알았나 보다.
사실은 늦게 출발해서 그런 건데.
1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정말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산에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저녁 7시 10분에 겨우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 직원이 엄청 걱정을 했었나 보다.
내가 제일 마지막 도착자였으니까.
배가 고파서 뭘 좀 먹어야 했는데 라면 하나 끓여 먹으니 밥도 내키지 않았다.
너무 지친 것이다.
탈진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그렇게 지리산 종주의 첫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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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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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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