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들에게는 있었지만 나에게는 없는 것

by 박은석


광복절이 다가오면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해 본다.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이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20-30대의 나이였다.

젊었다.

그 시대에는 스무 살이면 집안을 책임지는 나이였다고 하더라도 너무 젊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고 아이들도 어렸다.

안중근 열사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집안에 독립운동가들이 즐비한데 그가 이토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아버지 안중근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을까?

김구 선생께서 장개석에게 안중근의 둘째 아들을 잡으면 족쳐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는데 그 심정도 이해가 간다.

아버지 이름에 먹칠을 하고 다니는 아들이니까 혼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가까운 사돈 가문이었으니까 더더욱 속이 상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안중근의 둘째 아들에게 돌을 던지지 못한다.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을까?’라는 동정심이 들기 때문이다.





일본 제품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아내는 종종 농담을 한다.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내가 독립운동가가 되었을 거라고.

나는 가타부타 대답을 안 한다.

100년 전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나는 독립운동가는 되지 못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겁이 많기 때문이다.

가산을 모두 정리하고 압록강을 건너 안동 땅으로 망명을 간 이회영은 사십 대 초반의 나이였다.

가만히 있었으면 이 땅에서 먹고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못할 것 같다.

내가 살기 힘든 것도 아닌데 굳이 떠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상해 홍커우공원에서 물통 폭탄을 던진 윤봉길은 스물여섯 살이었다.

두 살, 네 살 아들을 둔 젊은 아빠였다.

폭탄을 던지면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못할 것 같다.

내 식구들 건사하는 게 더 중요한데 내가 죽으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보면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하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못할 것 같다.

설령 내 목숨 하나는 어쩌다가 독립운동에 가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내 아들의 목숨까지 건다는 것은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요원이었던 양우조, 최선화 부부는 딸을 낳고서 이름을 제시라고 지었다.

그리고 딸을 키우면서 육아일기를 썼다. <제시의 일기>이다.

말이 육아일기이지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 일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글이다.

매일 긴장하며 살아가는 것, 머리 위에서 폭탄이 떨어지는데 아기를 지켜내는 것.

나라면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도저히 못할 것 같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하늘을 향해서 엄청 소리를 쳤을 거다.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느냐고.




이봉창은 일본 왕에게 폭탄을 던졌지만 불발되었다.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졌지만 불발되었다.

이재명은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을 급습했지만 거사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어도 당당했다.

그 자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말만 남겼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나 같으면 재빨리 도망갈 궁리를 세웠을 것이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독립운동가들은 대단한 분들이다.

아무리 따라가려고 해도 그분들의 경지에 이르기는 힘들 것 같다.

많이 배운 분들도 아닌데, 인생을 오래 산 분들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 있다.

그분들은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사랑했다.

뜨겁게 사랑했다.

그랬기에 그 모든 일들이 가능했다.

내가 그분들처럼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나에게 그런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사진 설명 : 독립운동가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서 지은 서대문형무소 전경입니다.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있었지만 나에게는 없는 것00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