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지리산 종주(2)

by 박은석


아내는 날도 더운데 산에 왜 가냐고 한다.

내 대답은 ‘글쎄’이다.

물론 대답하지 않는다.

산에 가는 이유?

그런 것은 없다.

내 체력을 테스트해보려고?

체력 테스트를 할 만한 일들은 얼마든지 있다.

탄천길을 10킬로미터 뛰기, 줄넘기 1,000번 하기 같은 것으로도 체력 측정은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의 내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지리산을 가는 이유, 지리산 종주를 하는 이유, 그런 이유는 없다.

어차피 이번 지리산 종주는 갑자기 대충 계획을 짜서 떠난 여행길이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하고 목표를 세워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설령 그렇게 계획을 짜고 목표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삶의 여정 중에 수많은 돌발변수가 나타난다.

계획을 수정하고 목표를 다시 세우면서 처음과는 전혀 다른 길로 걸어가기도 한다.

나의 지리산 종주도 그랬다.

걸으면서 계속 계획들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에서는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자는 분위기가 일었다.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였으니까 에베레스트산을 정복하는 것도 자기네가 최초로 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1924년에 3번째 도전을 하려고 할 때 기자들이 몰려와서 물었다.

“왜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려 하나요?”

기자들로서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벌써 여러 명의 희생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원정대장인 조지 말로리(George Mallory)가 대답했다.

“산에 오르려는 이유요? 산이 거기 있으니까요(Because it is there).”

그렇게 떠난 원정이었다.

안타깝게도 말로리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정상은 내려오고 나서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It’s not until the summit comes down that it’s mine).”라고 말을 하곤 했는데 아직도 내려오지 않고 있다.

아마 산을 집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것 같다.




지리산을 흔히 한민족의 ‘어머니산’이라고 부른다.

산이면 다 산이지 아버지산이 있고 어머니산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지리산을 종주해보면 안다.

마치 어머니 품에 들어온 것처럼 포근하다.

멀리 갔던 새끼들 돌아왔냐며 반갑게 맞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정감이 든다.

그래서인지 지리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다 한식구 같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좋은 산행 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다들 어머니집에 온 것 같다.

지리산이 어머니산인 게 맞다.

비록 우리가 산을 떠날지언정 지리산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마치 어머니처럼.

천왕봉 정상에 세워진 정상석 비각에는 ‘한국인의 기상이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전남, 전북, 경남 3개 도에 우뚝 솟아 있는 지리산은 삼한을 바라보았고 가야 나라들을 굽어보았고 백제와 신라를 감싸 안았다.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된 산이라고 보아도 흠잡을 데가 없다.




11년 만에 찾은 지리산인데 변한 게 없다.

아니, 변하긴 했지만 다 알아보겠다.

어머니집에는 벽에, 문기둥에 새까맣게 쓰인 글씨들이 있었다.

내 어렸을 적에 끄적인 글들이었다.

다 커서도 그 글씨들을 보면 순식간에 시간여행을 했다.

지리산 이정표들도 그랬다.

분명히 변했을 텐데, 엊그제 보았던 것처럼 반가운 이름들이 거기에서 마구마구 튀어나왔다.

내가 11년 만에 왔다니까 맞은편에서 앉아 쉬던 형님 같은 분이 자기는 30년 만에 왔다고 했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른 거라고.

어디에 가시냐고는 묻지 않았다.

어머니 품에 안겼다가 또 어디론가 가는 게 우리의 삶이니까.

성삼재에서 8시간이 걸려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했는데 산지기들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먼 길 돌아서 이제 막 집에 도착한 기분이다.

1호실 11번 자리가 내가 묵을 자리였다.

식구 많은 집에는 자기 잠자리도 정해져 있다.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푹 몸을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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