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깜깜하다.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다.
지리산 대피소에서의 소등 시간은 저녁 9시이다.
지친 몸 때문에, 다음날의 산행 때문에 모두 일찍 자리에 눕는다.
침상은 위아래 2층 구조인데 옆사람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낮은 칸막이도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5시간 가까이 잠을 잤으니 평상시와 잠자는 시간은 비슷하다.
눈이 깬 김에 화장실에 잠깐 다녀왔는데 바깥공기가 초겨울 날씨처럼 오싹했다.
이곳이 해발 고도 1,653m인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밖에는 아무도 없다.
새벽 산행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5시에 일어나기로 하고 조용히 다시 자리에 누웠다.
2시간 넘도록 뒤척이기만 했다.
다시 일어났다. 4시 30분.
버너에 불을 피웠다.
어젯밤에 먹다가 남긴 밥을 꺼냈다.
삼겹살도, 김치도 다 섞어서 나만의 제육볶음을 만들어 먹었다.
맛있었다.
평상시에는 에스프레소 커피만 마신다.
하지만 산에서는 달달한 맥심 봉지커피가 더 낫다.
오늘은 대피소에서 제일 먼저 아침밥을 먹은 사람이 되었다.
어젯밤에는 탈진 직전이었지만 잠이 보약인지 체력이 회복되었다.
다시 출발이다.
새벽 5:50이었다.
세석대피소까지는 3시간이 걸릴 테고 그다음 장터목대피소까지는 또 2시간이 추가될 것이다.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천왕봉을 찍고 다시 성삼재로 돌아오려고 했던 어제까지의 계획은 취소했다.
연하천대피소를 예약까지 했지만 도저히 오늘 산행으로는 연하천대피소까지 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나의 지리산 왕복종주의 계획은 물 건너갔다.
하기는 원래부터 계획을 세웠던 것도 아니다.
이번 종주는 처음부터 즉석 계획이었다.
성삼재로 가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순간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저녁까지 하산하면 된다.
전에는 중산리로 내려갔는데 이번에는 백무동이다.
1시간 조금 지나서 선비샘에 도착했다.
나를 앞질러 갔던 두 사람이 목을 축이고 있었다.
11년 전에는 물통에 딱 한 모금의 물만 남긴 채 이곳에 도착했었다.
그때는 벽소령대피소에서 물을 충전하지 않은 게 큰 화근이 될 뻔했다.
마지막 한 모금은 절대로 마시지 말라고 했던 논산훈련소 조교의 말이 떠올라서 참고 또 참으면서 걸었다.
그러다가 선비샘을 만났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쁨이었다.
그때의 기분을 잠깐 느껴볼 겸 물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켰다.
산 아래 있으면 방금 전에 겪은 일들도 금방 잊어버리는데 산 위에 오르면 옛 기억도 새록새록 돋아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산에 가서 공부를 했나 보다.
산에 오르면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도, 나를 괴롭혔던 일들도 떠오른다.
잊은 줄 알았는데 잊지 않았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는데 지혜가 떠오른다.
하늘과 가까워서인지 하늘의 지혜를 얻는 것 같다.
세석대피소까지 왔다.
풍광이 좋다.
약수도 시원하다.
동양 최대의 대피소라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냥 지나는 길에 마주친 대피소일 뿐이다.
이곳이 목적지도 아니고 묵을 곳도 아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남들이 좋다는 것에 혹하고 대단하다고 하는 것에 혹하며 산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말에 휩쓸리며 산다.
잠깐 스쳐 지나갈 뿐인데 마치 그것이 나와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정신 차려야 한다.
여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세석대피소가 아무리 커도 잠깐 앉았다가 떠나야 할 대피소이다.
이정표가 나의 길을 재촉했다.
3.4㎞를 더 가야 한다.
기껏 걸었다고 생각해도 다시 이정표를 보면 고작 0.5㎞ 걸었다.
이정표의 거리 표시를 엉터리로 해놓은 것 같다고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드디어 내 눈앞에 장터목대피소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