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지리산 종주(4)

by 박은석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지구에서 제일 높은 산에 오르려고 하고 지구에서 제일 깊은 바다에 들어가려고 한다.

지구를 벗어나 달나라에도 가고 화성 너머 망망한 우주로 가보려고도 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쪽에 있는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인도네시아 사람들과 얼굴이 비슷하다.

먼 옛날 인도네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아프리카로 갔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옛날 그 먼바다를 어떻게 배로 넘었을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기나긴 항해를 했을까?

남미의 토박이들은 몽골인들과 비슷하다.

먼 옛날 몽골에서 살던 사람들이 얼음을 타고 남미로 갔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옛날 얼마나 추웠길래 지구가 얼어붙었을까?

도대체 몽골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길고도 긴 여정을 했을까?

지금이야 이사하는 게 어렵지 않지만 고대사회에서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행동이었다.




지리산 장터목대피소에 올라 보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해발 고도 1,750m에 위치한 이곳에 장(場)이 섰었다고 한다.

백무동 쪽인 함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중산리 쪽인 산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이 산꼭대기에서 물건을 사고팔았다는 것이다.

중산리나 백무동에서 이곳까지 올라오려면 족히 4시간은 걸린다.

그런데 지게를 지고, 등짐을 지고, 머리에 짐을 이고 이곳까지 오르내렸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장날이라고 하면 보통 5일장인데 그렇다면 5일마다 이곳을 오르내렸다는 말인가?

보통 사람의 체력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왜 그랬을까?

답은 한 가지로 정리된다.

살기 위해서다.

인도네시아에서 배를 타고 마다가스카르로 간 것도, 몽골에서 얼음 위를 걸어 남미로 떠나간 것도, 짐을 지고 장터목에 오르내린 것도 다 살기 위해서였다.




살기 위한 인간의 집념은 그 무엇으로도 꺾을 수 없다.

그 집념 때문에 높은 산을 정복하고 바다 깊숙이 들어가고 우주로까지 날아가고 있다.

장터목에 와야만 구할 수 있었던 물건들이 있었기에 새벽부터 부지런히 산을 올랐을 것이다.

장터목에서 구하지 못하면 장터목을 넘어가야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장터목을 넘어야 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장터목에서 사고팔자고 약속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장이 들어선 것이다.

인류 최초의 무역 물품은 소금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장터목에서도 소금을 팔았을까?

하산길에 백무동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께서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장터목에서 팔았던 것은 소금이었다고.

소금을 사기 위해서 옷감이나 생필품을 가지고 갔고 소금을 팔고 옷감이나 생필품을 샀다.

그리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서 국밥집이 생기고 전을 부치고 떡을 팔았다.




장이 섰으면 당연히 장 구경을 하고 가야 한다.

지금은 장이 안 서니까 그냥 지나칠까?

그렇지 않다.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터목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멀리 뻗어 있는 함양 쪽 산자락도 보고 뒤돌아서 산청 쪽 산자락도 본다.

지나온 길인 구례 쪽 산길을 보며 뿌듯해하고 앞으로 가야 할 천왕봉 쪽 산길을 보면서 마음을 다진다.

장터목의 식수는 물맛도 좋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나오는 식수일 것이다.

그 물을 받아서 라면을 끓인다.

고도가 높은 곳이니까 밥을 할 때는 코펠 뚜껑 위에 무거운 돌을 하나 얹어놓아야 한다.

지친 나그네를 위해서 대피소에서 햇반을 데워서 판매한다.

밥과 라면, 김치만 있으면 충분하다.

산에서 라면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

산 밑의 열댓 가지 나오는 한정식보다 이곳의 라면 한 그릇이 훨씬 맛있다.

장터목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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