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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4. 2020

길에 끌려가지 말고 길을 만들어가자


자동차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 검색을 하면 가는 길이 몇 가지 뜬다. 거리가 짧은 길, 자동차 전용도로를 이용하는 길, 무료로 가는 길, 내비게이션이 추천하는 길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

선뜻 기름값도 아끼고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거리가 짧은 길을 택하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거리가 짧은 길이 빨리 가는 길이라면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이 괜히 수고롭게 다른 길들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

거리가 짧더라도 실제로 그 길을 이용하면 결코 시간이 단축되지 않는다.

속도 제한이 아주 낮게 정해져 있다든지 신호등이 많다든지 그 길을 이용하는 차량이 많든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거리는 짧지만 빨리 가지 못하는 길이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좀 돌아가더라도 실시간으로 안내해주는 빠른 길을 택한다.



출발선은 같았다. 그러나 길은 여러 갈래다. 어느 길로 가는 것이 가장 좋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빨리 들어오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가장 늦게 들어오는 것이 나은지 섣부르게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런데 자꾸 빨리만 가려 한다. 나보다 빨리 가는 사람을 보면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서 후회막급이다. 뒤처지면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 것만 같다.

동창생들 소식을 들으면 이런 감정은 더 심해진다. 그들이 고속도로처럼 질주하는데 내가 선택한 길은 신호등과 교차로가 많아서 속도를 줄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영영 뒤처진 인생으로 끝나는 것인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

하지만 인생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오늘은 이렇지만 내일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반체제 운동을 벌이다가 잡혀서 28세의 나이에 사형 판결을 받았다.

희망? 그런 것이 통하지 않았다.

형 집행 명령이 떨어졌고 그는 형장으로 끌려갔다. 처절히 패배한 것처럼 여겨졌다. 남아 있는 시간은 10분, 5분 이제 끝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황제의 사면령이 전달되었다. 죽이지 말라고. 그래서 그는 사형 대신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백범 김구 선생이 이 비슷한 일을 겪으셨다.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복수심에 차오른 청년 김창수는 일본 군인 한 명을 죽인 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억울한 재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에 고종황제의 특사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에디슨이 고종황제에게 선물한 전화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에 이름을 김구로 바꾸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바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평생 헌신하는 길을 택했다.



쭈욱 뻗은 길로 빨리 가려고만 할 필요는 없다.

자동차 경주를 하는 선수들은 빨리 가느라고 주변 경관을 살필 수가 없다.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없다. 길에 정복당한 채 끌려가는 것이다.


반면에 신호등과 교차로가 많으면 빨리 갈 수가 없다. 하지만 잠깐 멈추며 신호등이 바뀌는 동안 생각할 수 있는 틈, 선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느릿느릿 가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길과 내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길에 정복당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길을 정복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꼬불꼬불 사연이 많은 길을 선택하면 이야깃거리가 되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일들이 생긴다.

늦었다고 재촉하는 그 조급증을 좀 버리자.

이 길도 괜찮은 길이고 지금까지도 잘 왔다. 앞으로도 잘 가게 될 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길이 가장 빠른 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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