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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3. 2020

누군가에게 커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에스프레소 도피오에 샷 추가해서 주세요.” 나의 커피 주문 방식이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신지 20년은 되었다.

그 전에는 어떤 커피를 마셨더라?


처음 커피를 마신 것은 국민학교 5학년 때의 어느 날이었다. 일요일 점심이면 어머니가 커피를 끓이셨다.

큰 주전자에 물을 팔팔 끓이고 동그란 유리병에 담긴 커피가루를 풀어 넣고 다음에는 하얀색 분유가루 같은 크리머를 또 비슷한 양으로 부으셨다. 물은 커피색을 따라 검게 변했다가 프리마가 녹아들면서 옅은 황토색을 띠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흰설탕을 적당히 넣고 숟가락으로 몇 바퀴 휘휘 저은 후 주전자 뚜껑을 닫고 들고 가셨다.


우리 집이 교회 바로 옆에 있었기에 어머니가 종종 그렇게 성가대원들과 여러 사람들에게 커피 대접을 하셨다.

그러더 어느 나는 커피가 도대체 무슨 맛일까 해서 조금 맛을 보았고 이내 한 사발씩 벌컥벌컥 들이키곤 했다.

처음에는 쌉싸름한 맛보다 아마 프리마와 설탕의 조합에서 오는 달콤한 맛에 더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때의 커피 이름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커피는 맥스웰, 크림은 프리마!’




커피 사랑은 고등학생 때 더욱 굳어졌다.

대부분의 학교가 남학교, 여학교로 구분되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운 좋게도 남녀공학을 다녔다. 비록 남학생반과 여학생반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는 숱한 이야기들이 넘쳐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과외교육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어서 방과 후에는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이어졌고 더 공부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해서는 밤늦게까지 학교도서관이 열려 있었다.


평소에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눈이 의식되어서 남녀의 경계가 분명했었지만 도서관 커피자판기 앞에서는 여학생들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자판기의 메뉴는 율무차, 유자차, 밀크커피, 블랙커피, 크림커피 정도였는데 나는 당연히 밀크커피였다. 

가끔 여학생들 앞에서는 좀 더 센 척 블랙커피도 눌러보기도 했다.

공휴일에도 학교 도서관을 뻔질나게 다녔던 것은 자판기 커피와 어우러진 그 야릇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대학시절은 학교 앞 다방커피를 잊을 수 없다.

넉넉한 아침시간에는 모닝커피였는데, 커피, 크림, 설탕의 3박자에 계란 하나 동동 얹어주곤 했었다.

지금은 카페 혹은 커피숍이라고 간판을 내거는데 그때는 ‘다방’이라는 이름을 많이 썼다.

그 학교 앞 2층 다방 ‘오두막’에서 사랑이야기를 나누었던 여인과 딸, 아들을 낳고 지금껏 잘 살고 있다.


그 즈음에 봉지커피도 활개를 쳤는데 웬만한 모임에서는 종이컵에 커피 한 봉지는 기본이었다. 

식당에서도 손님들을 위해서 발 빠르게 자그마한 자판기들을 설치하였다.

봉지커피는 네스카페가 좋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맥심이었다. 

그리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맥심모카골드가 최고였다

산에 갈 때나 배낭여행 때나 맥심모카골드 몇 봉지를 배낭에 쑤셔넣고 가면 어디서나 환영받았다. 

뜨거운 물은 말만 잘 하면 흔쾌히 얻을 수 있었다.




다방이 커피숍으로 간판을 고칠 때쯤에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메뉴에는 생소한 이름들이 주욱 나열되었는데 내 눈에 딱 들어온 것은 에스프레소였다. 일단은 싸니까. 그리고 자그마한 컵을 손에 쥐고 있으면 폼 나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다.


내 인생의 8할에 이르는 시간을 커피가 함께해 주었다.

나는 생각이 다르고 맘에 맞지 않으면 친하게 지내다가도 연락을 끊어버리고 떠나버리는데 커피는 오래도록 내 곁을 지켜주고 있다.

오히려 내 변덕스러움에 맞춰서 맥스웰, 맥심, 에스프레소 등 모양을 바꿔가면서도 내 곁에 있어주었다.

어쩌면 커피 때문에 내가 이만큼이라도 온 것 같다. 참 고마운 친구다.


나도 누군가에게 커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도록 곁에 머물며 계속 응원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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