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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8. 2020

사람들은 왜 편의점을 좋아할까?


밤늦은 시간, 갑자기 촐촐함이 배를 진동한다. 냉장고를 열어보았는데 마뜩찮다.

허기와 갈증을 달래줄 뭔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없다.

이럴 때는 좋은 방법이 있다.

우리에게는 편의점이 있다.

다행히 집에서 백 발자국만 움직이면 편의점이 하나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정확하게는 내 키가 170Cm 조금 넘으니까 60번 정도만 엎어지면 된다.


이 편의점은 일 년 열두 달 하루 스물네 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일본에서 시작한 편의점은 이제 전 세계 도처에 자리를 잡았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히 운영을 하는 것 같다.


낮에는 주인장이 자리를 지키지만 밤 시간에는 주로 시간제 근무자가 지키고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다. 자주 바뀌니까.

몇 개월 안 가서 또 다른 사람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 더 편하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니까.




내 어릴 적 동네에는 점방이라는 게 있었다.

구멍가게라고도 불렸는데 자그마한 공간에 물건을 벌이고 팔아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점방 주인은 저녁 어스름이 깊어지면 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래서 깊은 밤에 물건 하나 구입하려면 점방 문을 몇 번이나 두드려야 했다.

그러면 주인장은 귀찮은 표정으로 부스스하게 나오시곤 했다.

겨울이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삼립호빵을 팔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아이스께끼를 팔았다.


점방 문 앞에 놓인 널찍한 평상에서는 동네 아저씨들이 낮술도 드시고 화투도 치셨다.

아줌마들은 모여 앉아 마늘도 까고 나물도 다듬으며 수다를 떨곤 하셨다.


점방이 자취를 감춘 것은 넓은 슈퍼마켓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가게 이름부터가 부담스러웠다. ‘슈퍼’라고도 했다가 ‘수퍼’라고도 했다.

주인도 외지 사람이어서 정 붙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물건들은 다 들어차 있었다.




슈퍼마켓이 동네에서 영원토록 자리를 차지할 줄 알았는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낯선 모양의 편의점이라는 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매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고 없을 것은 없었다.

어두움과 친숙한 알전구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점방과는 빛의 밝기에서부터 차이가 있었다.

슈퍼마켓 매대에는 물건들이 장황하게 널려 있어 어지러웠는데 편의점은 산뜻하고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폼은 훨씬 나았다.

한쪽 구석에는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시설과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당연히 슈퍼보다는 편의점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동네 슈퍼도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는 두부 사러 슈퍼에 다녀오라는 말보다 편의점에 다녀오라는 심부름이 더 흔하게 들린다.




온 동네가 편의점 세상이 된 것 같다.

내가 즐겨 가는 편의점만 해도 동네에 다섯 군데나 있다.

아이들은 친구와의 약속 장소로 편의점을 잡고 그곳에서 삼각김밥과 사발면으로 간식을 때운다.


혹시나 하고 가 보면 역시나 찾던 물건이 있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편의점에 그 물건이 없으면 굉장히 허탈한 기분이 든다.

물건 두 개 사면 하나를 덤으로 주는 행사도 종종 한다.


시골길 가다가 편의점 표시만 봐도 반갑다.

그곳에 가면 목도 축이고 커피도 마시고 화장실도 해결되고 잠깐 의자에 앉아서 쉴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시대의 흐름이 편의점으로 넘어갔다.

이름부터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으로 움직인다.

아! 나도 편의점처럼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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