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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22. 2023

우리는 표준대로 살지 않고 생긴 대로 산다


내 옷 치수는 주로 XL이거나 XXL이다.

숫자로는 얼마 전까지는 100사이즈였는데 요즘에는 105사이즈가 잘 맞는다.

양복은 103사이즈를 입었을 때 핏이 잘 나온다고 한다.

어느 공장에서 옷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내 몸에 맞기도 하고 조금 작거나 클 수가 있다.

처음부터 내 몸의 치수를 재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들 나름대로의 표준 치수가 있어서 그 기준에 맞춰 옷을 만든다.

그리고 자기들이 만든 옷 치수에 내 몸을 맞추라고 한다.

표준 치수에 비해 몸의 균형이 조금 다른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나처럼 팔의 길이가 조금 길거나 몸이 너무 홀쭉하거나 뚱뚱한 사람이 있다.

이럴 때 참 애매하다.

표준 치수를 키에 맞출 것인지 팔 길이로 맞출 것인지 가슴둘레로 맞출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새 옷을 사서 수선집에 맡겨야 한다.

길이를 조절해서 내 몸에 맞게 고쳐야 한다.

표준 치수의 한계이다.




내 키는 172㎝이고 발은 270㎜이다.

내 또래에서는 평균 체형이라고 했다.

군복무 때는 평균치수가 참 좋았다.

군복이든 전투화든 제일 많은 치수가 바로 내 몸에 맞는 치수였다.

군용물자가 부족할 때가 가끔 있었다.

부족한 게 아니라 맞는 사이즈가 없을 때였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 하겠다.

그럴 때면 흔히 하는 말이 있었다.

“전투화에 발을 맞춰!” 그게 말이 되냐고 하겠지만 그때는 말이 됐다.

발이 큰 사람도, 발볼이 넓은 사람도 군소리 없이 맞춰야 했다.

그들의 편의를 위한 군대는 없었다.

오직 표준 군대만 있을 뿐이었다.

그럼 표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

머리가 너무 커서 표준 전투모를 도저히 쓸 수 없는 사람은?

몸이 너무 뚱뚱해서 표준 군복을 입을 수 없는 사람은?

발이 너무 커서 표준 전투화를 도저히 신을 수 없는 사람은?

정말 부럽게도 표준에서 벗어난 그들은 모두 현역 면제였다.




사회는 우리에게 표준을 요구한다.

옛날 힘 있는 군주들은 백성들에게 자기가 만든 표준을 따르라고 했다.

역사책을 읽다가 누가 도량형을 정했다느니 화폐를 정했다느니 하는 말이 나온다면 그 군주가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량형을 통일했다는 것은 물건의 크기와 무게를 정했다는 것이다.

화폐를 정했다는 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기준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렇게 정한 군주의 기준에 맞춰서 살아가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군주에게 세금을 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시대에 어떤 분야에서 표준이 세워졌다는 것은 단순히 편하게 되었다는 뜻을 넘어 다양한 삶의 정황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지간을 기준으로 하루 12시간을 지키던 우리가 1895년에 갑자기 하루 24시간제로 바뀌었다.

일본의 요구에 의해서였다.

일본의 힘에 눌려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표준에 맞추려고 애를 쓰지만 표준에 다 맞출 수는 없다.

1945년 9월 9일에 미국의 <클리블랜드 플레인 딜러(Cleveland Plain Dealer)>라는 신문에 어떤 대회의 광고가 실렸다.

우승자에게는 100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 대회는 ‘노르마(Norma)’라는 조각상과 신체 치수가 비슷한 여성을 뽑는 대회였다.

노르마는 로버트 디킨슨 박사와 조각가 아브람 벨스키가 1만 5,000명의 젊은 미국 성인 여성들의 신체 치수를 재서 평균을 내고 표준화시켜 만든 조각상이었다.

노르마는 가장 이상적이며 가장 미국인 다운 건강한 체형이라고 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이 평균치에 해당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대회를 열고 보니 모든 항목에 거처 평균치에 드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때 알았다.

표준에 맞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표준대로 사는 게 아니라 생긴 대로 살아가고 있다.

노르만(Norman)과 노르마(Norma)  조각상

사진 출처 : https://remedianetwork.files.wordpress.com/2012/10/norma-and-norman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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