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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12. 2023

내 삶을 망원경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면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대고 초점을 맞추면 멀리 있는 사물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크고 또렷하게 보인다.

신기했다.

어떻게 저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끌어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망원경의 원리를 알고 나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유리 몇 개 끼워 넣으면 멀리 있는 것도 가까이 끌어당길 수 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삶에도 유리 몇 개 끼워 넣어서 망원경처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만 끌어당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손해 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는 사람을 가까이 끌고 올 수 있다면 그 사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먼 미래를 가까이 끌어올 수 있으면 실패할 확률이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설정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확대해서 볼 수 있다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느라고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망원경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유리 몇 개 끼워 넣는다고 해서 내 삶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먼 미래를 가까이 끌어올 수도 없고 멀리 있는 사람을 가까이 데려올 수도 없다.

인생은 망원경처럼 중요한 것만 콕 집어서 그것을 확대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별 쓸데없이 여겨지는 것까지도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찌 보면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는 그 시간이 아까울 수 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다.

괜히 나만 손해 보는 것 같다.

남들은 저만큼 앞에서 달려가는데 나 혼자만 멀찍이 뒤처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내 삶에는 잔가지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것들을 쳐내느라고 힘을 다 빼버리는 것 같다.

그러니까 누군가 망원경을 꺼내서 나의 삶을 들여다본다면 특별히 볼 것이 없을 것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밋밋한 그림들만 나열되어 있는 것이 나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전망대에 올라가서 500원짜리 주화 몇 개 넣고 망원경으로 먼 땅을 들여다보았을 때의 기분과 비슷할 것 같다.

멀리 있는 것을 확대해서 보기는 했지만 딱히 볼만한 게 없었다.

건물 몇 채, 간혹가다가 사람 하나 나올까 말까였다.

멀리 있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 멀리 있는 풍경이나 지금 내 곁의 풍경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 수풀이 있는 것처럼 이곳에도 수풀이 있고 그곳에 나무가 있는 것처럼 이곳에도 나무가 있었다.

특별한 것 하나라도 찾아보려고 망원경의 두 렌즈에 내 두 눈을 바짝 갖다 대었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내가 왜 돈까지 지불하면서 이런 걸 보고 있는지 한심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망원경으로 내 삶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내 삶이 별것 아니라고 하겠지만 누군가는 내 삶을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나는 내 삶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풀과 나무와 같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내 삶의 수풀과 나무를 아주 귀하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망원경으로 나에게서 멀리 있는 것을 보려고 하지만 누군가는 망원경으로 내 곁에 있는 것들을 보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것 중에서 특별한 것을 찾는 것처럼 누군가는 망원경으로 내 곁을 보면서 나에게서 특별한 것을 찾지는 않을까?

내 삶이 별것 아니라고 하는 것은 나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내 삶이 실패했다고 하는 것도 나의 착각인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런 내 삶을 대단하다며 부러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곰곰이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면 중요하지 않은 삶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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