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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13. 2023

깨졌다는 것은 다시 붙일 기회가 생긴 것이다


정명가도(征明假道)!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명분이다.

명나라를 치러 가는데 조선의 땅을 빌려달라는 것이다.

수십 년 간 전쟁을 치르면서 온 나라가 피폐해졌을 텐데 그 상태에서 왜 해외 원정 전쟁까지 벌였을까?

한 편에서는 일본 안에서 더 이상 싸울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준 것이 임진왜란이라고 한다.

사무라이들의 호전적인 기질을 이용해서 명나라까지 정복하자고 외친 것이란다.

사무라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주어지는 것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입장에서는 내분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사무라이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 임진왜란이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포르투갈에게 빌린 조총값을 갚기 위해 임진왜란을 벌였다고 한다.

포르투갈에게 줄 돈은 없었고 대신 도자기로 갚겠다며 조선의 도공을 잡아간 ‘도자기 전쟁’이라는 것이다.




왜 조선의 도공을 잡아갔을까?

일본에는 도공이 없었을까?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도자기 제조 기술을 가진 나라는 중국과 조선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는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었다.

실크로드의 주축을 이룬 아랍지역에서도 만들 수가 없었다.

1000℃가 넘는 온도에서도 녹아내리지 않는 흙이 있어야 했다.

그만큼 뜨거운 온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불가마가 있어야 했다.

불을 땔 수 있는 나무가 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솜씨 좋은 장인이 있어야 했다.

이 모든 요건을 충족시킨 나라가 바로 중국과 조선이었다.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려면 잔이 필요했는데 나무를 깎아서 만든 잔이나 토기 잔은 수준이 떨어졌다.

이럴 때 도자기 잔이 하나 있으면 굉장히 폼나는 일이었다.

도자기는 원래부터가 비싼 물건이었는데 배를 타고 해외로 나가면 그 값은 수십 배나 뛰었다.

도자기 그릇만 봐도 그 집안의 부를 측량할 수 있었다.




집에서 가장 애지중지하던 도자기 그릇이 실수로 그만 깨졌다고 하면 난리가 났다.

하인이 깨뜨렸다면 몰매를 맞기도 했을 것이다.

버리기는 너무 아깝고 붙여서라도 써 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깨진 그릇을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잘 붙지도 않는다.

중국이나 조선에서도 그릇 붙여서 쓰는 기술은 그다지 환영받지도 못했다.

설령 그릇을 붙인다고 해도 붙인 티가 너무 심했다.

손님상에는 절대로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도자기 그릇을 제작할 기술이 없었던 일본에서 이 깨진 그릇을 붙이는 기술이 나왔다.

그냥 조각을 맞춰서 붙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깨진 부위에 옻칠을 하고 접착제를 바르고 그 위에 다시 금으로 칠을 하였다.

물론 거칠어진 그릇 표면을 사포질로 깨끗하게 다듬었다.

이렇게 해서 도자기 그릇에 금색선으로 무늬를 넣은 킨츠기(金継ぎ)라는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다.




‘금(金)으로 붙인다(継ぎ)’는 뜻을 지닌 킨츠기는 단순한 그릇 수선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과정이 되었다.

처음에는 깨진 그릇 하나만 붙였는데 점차 서로 다른 그릇의 조각들을 가져다 붙이는 기술로 발전하였다.

원래의 그릇보다 깨져서 붙인 그릇이 더 비싸게 팔리게 되었다.

주인에게나 그릇에게나 깨졌을 때의 아픔은 너무나 컸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상실감이 들었을 것이다.

끝났고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깨진 곳을 잘 붙이면, 그 아픔을 잘 치료하면, 그 상실감을 잘 다독이면 이전보다 더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다.

그릇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깨지지 않는 도자기는 없다.

상처받지 않고 아픔을 겪지 않는 사람도 없다.

떨어지면 깨지고 실수해도 깨진다.

그러나 깨졌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다시 붙일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질 기회가 생긴 것이다.


사진출처 : https://media.d-department.com/wp/wp-content/uploads/2022/02/IMG_0791-300x3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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