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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07. 2023

이 여름의 풍경에서 빠진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에 지방의 어느 산골마을을 들렀는데 깜짝 놀랐다.

해가 지니까 마을 자체가 깜깜해져 버릴 정도로 가구 수가 많지 않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그 마을에 마을회관이 번듯하게 지어져 있었고 마을 입구에는 아스팔트가 깔려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도 잘 만들어져 있었다.

요즘 저출산 현상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데 더군다나 산골 마을인 그 동네에 아이들이 과연 몇 명인지 궁금했다.

번듯한 놀이터를 만들어 놓았으면 아이들이 여럿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부러웠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는 변변한 놀이 시설이 없었다.

어린이 놀이터는 우리 동네에서 4킬로미터나 걸어가야 볼 수 있었다.

놀이터라고 해봐야 미끄럼틀과 그네, 시소, 그리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놀이터가 있는 마을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없었으니까.




가난한 시골 동네였으니까 마을 어른들도 모두 살아가는 데 바빴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우리나라도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큰 도시나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우리 동네처럼 한 학년에 한 반 정도밖에 안 되는 마을에까지 어린이 놀이터를 만들어 주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놀이터가 있는 동네였다면 방과 후에 놀이터에서 놀았을 것이다.

그런데 놀이터가 없는 마을이었으니까 딱히 친구들과 놀만한 공간이 없었다.

아니, 친구들과 하늘 아래 어디서든지 놀 수 있었다.

때로는 마을 골목에서 숨바꼭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알려진 오징어게임을 하고 자치기, 팽이치기, 딱지치기, 사방치기를 하며 놀았다.

겨울이면 신문지와 달력에 대나무 살을 붙여서 연을 만들었고 언덕 위에서는 비료 포대로 썰매를 탔다.




꽃 피는 봄에는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는 벌을 잡았고 여름이 다가오는 밤이면 시끄럽게 울어대는 맹꽁이를 잡겠다고 난리를 쳤다.

햇빛 짱짱한 한여름의 낮에는 맴맴 울어대는 매미를 잡았고 저녁에는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빨간 고추잠자리를 잡았다.

밤이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불환디를 잡기도 했는데 어느 마을에서는 반딧불이라고 했고 어느 마을에서는 개똥벌레라고도 했다.

배때기에서 밝은 빛을 내는 그놈이 참 신기했다.

그놈들을 모아서 등잔불로 사용했다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의 이야기가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궁금증으로 남았다.

그때는 이런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구질구질했다.

가난한 티가 역력했다.

이런 곳에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말하기 싫었다.

콘크리트로 네모나게 지은 집에 살고 싶었다.

비가 와도 마당이 질퍽거리지 않게 시멘트가 잘 발라진 집에 살고 싶었다.




스무 살 이후에 소원성취했다.

콘크리트로 네모나게 지은 집에서만 살았다.

이사를 해도 그런 집이었다.

비가 와도 마당이 질퍽거리지 않는 집에 살고 있다.

마당은 아스콘으로 깨끗하게 덮여 있다.

이만하면 꽤 괜찮은 마을인 것 같다.

가끔은 매미가 울어대고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들에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질 것이다.

더 이상 꿀벌을 잡지 않는다.

맹꽁이도 잡지 않는다.

불환디도 잡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꿀벌이나 맹꽁이나 불환디는 내가 잡지 않는 게 아니라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이때쯤에 흔히 보이던 것들인데 요즘에는 안 보인다.

사라져 버렸다.

거추장한 것들이 안 보여서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그것들이 보여야 봄의 그림, 여름의 그림이 완성되는데 그것들이 안 보이니 그림이 완성되지 않는다.

도대체 그것들은 어디로 소풍을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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