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은 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초저녁에 잠깐 눈을 붙인다고 했는데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중간에 잠깐 눈을 떴다가 또 잠이 들었다.
그러기를 두세 번 했을까?
시계를 봤더니 밤 12시가 넘었다.
아차차 큰일이다.
저녁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는데 시간을 넘기고 만 것이다.
다른 누군가와 약속을 한 것은 아니다.
나 스스로 세운 계획이었다.
그 계획이 틀어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했다.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
그 계획을 완수하려면 훨씬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아무래도 정한 시간 내에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것 같다.
살짝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별것도 아닌데 그런 것에 불안해하느냐고 할 테지만 그런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일 때문에 불안해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없을 때 불안하고 없으면 좋겠는데 그게 있어서 불안해한다.
가만히 있다가도 덜컥 불안하고 한창 즐겁게 지내다가도 순식간에 불안의 폭풍이 분다.
나에게만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일까 싶어서 교보문고 홈페이지에서 ‘불안’이란 단어를 검색해 봤다.
‘불안’이라는 말을 제목으로 꼽은 책들이 얼마나 될까?
엔터를 눌렀더니 모니터에 3,657이라는 숫자가 떴다.
동일한 책이 개정판이나 전자책으로 나오기도 했으니까 그걸 감안하면 숫자는 조금 줄 것이다.
그래도 3천 건은 될 것 같았다.
대단히 많은 숫자이다.
적어도 책을 쓴 3천 명의 작가들은 불안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책 1권의 독자가 평균 100명이라면 30만 명이 불안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책 1권의 독자가 평균 1,000명이라면 300만 명의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불안을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받아들여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느끼는 대표적인 감정을 불안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그만큼 불안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엄마 뱃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와 하나였는데 이제는 떨어졌다는 생각에 분리불안을 겪는다고 한다.
조금 자라면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생긴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불안해하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불안해한다.
취업을 앞두고 불안해하고 결혼을 앞두고도 불안해한다.
아이를 낳으면 갑자기 부모가 되었다는 불안감이 몰려온다.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하는 마음에 불안해하고 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불안해한다.
연세가 많아진 부모님을 보며 불안해하고 흰머리가 늘어나는 배우자를 보면서 불안해한다.
길거리에 나서면 누가 나를 해코지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집에 들어와 있으면 집이 무너질까 불안해한다.
행성이 날아와 지구에 부딪힐까 불안해하고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까 불안해한다.
쓸데없는 생각 같지만 모든 생각에 불안이 끼어 있다.
집안에 의사가 있으면 질병에 대한 정보를 잘 알 수 있으니까 불안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집 식구가 모두 의사인 가정도 불안을 치료하지는 못한다.
돈이면 다 해결되는 세상이니까 돈만 충분히 있으면 불안 정도는 가뿐히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집에 돈을 쌓아두고 사는 사람도 불안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우리가 서 있는 땅 자체가 불안한 땅이다.
여기서 한 발짝만 왼쪽으로 가도 불안하고 한 발짝만 오른쪽으로 가도 불안하다.
앞뒤로 가는 것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거기 그대로 서 있으라는 말도 불안하고 거기서 나오라는 말도 불안하다.
사소한 일에 사소하게 불안해하고 큰일에 크게 불안해한다.
불안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감정인가 보다.
그렇다면 불안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불안한 마음이 있는 것은 내가 사람인 까닭이고 불안을 느끼는 것은 내가 살아있는 까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