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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05. 2023

빨리 가는 것보다 안전하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달리기를 잘했었다.

아이들이 모이기만 하면 “준비, 땅!”하며 달렸다.

“1등!” 외치며 결승점에 도달하는 게 좋았다.

지는 게 싫었다.

남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등은 한 명뿐이었다.

빨리 뛰면 다 좋은 줄 알았다.

선생님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영어 문장을 알려주셨다.

우리가 나가서 살아야 하는 세상은 무한 경쟁사회라고 하셨다.

거기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일찍 뛰어야 하고 빨리 뛰어야 한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살았던 20세기는 치열한 경쟁사회가 맞았다.

자전거, 자동차, 기차, 비행기가 연이어 출현했다.

대포가 미사일로 진보하였고 그다음에는 로켓이 나오고 우주선이 나왔다.

더 빨리 가고 더 멀리 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나라 예산의 5분의 1을 투자해서 아폴로 우주선을 쏘았다고 한다.

암스트롱이 달나라에 발자국을 찍었기에 다행이었다.




그런데 빨리 달리려고 하다 보면 꼭 넘어지는 아이가 생긴다.

멀리 가려고 하면 탈이 나는 사람이 생긴다.

자전거를 타고 빨리 달리다가 무르팍이 깨진 아이들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무르팍 3번은 까져야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멀리 달나라 별나라까지 우주선을 보내려고 수년 동안 연구하고 개발했는데 카운트다운을 마치자마자 몇 초만에 불덩이가 돼 버리는 일들도 많았다.

빨리 가고 멀리 가려는 욕심 때문에 너무나 많은 피해를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콩코드라는 비행기는 시속 2천 킬로미터를 넘게 날 수 있었지만 빠른 속도 못지않게 엄청난 소음과 대기오염을 발생시켰다.

사람들은 빨리 가는 것보다 천천히 가더라도 값싸고 조용한 비행기를 선택했다.

결국 콩코드는 2003년 마지막 비행을 마친 후 지금까지 조용히 잠을 자고 있다.

빨리 달리는 기차를 피하지 못해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모두가 빨리 가는 것을 이야기할 때 빨리 가기보다 안전하게 가는 것을 추구한 사람들이 있었다.

스웨덴의 아서 가브리엘슨이라는 경제학자와 SFK라는 볼베어링 회사의 엔지니어였던 구스타프 라슨이었다.

어느 만찬에서 포드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들이 직접 자동차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독일 자동차처럼 무한질주를 하는 자동차가 아니었다.

스웨덴의 척박한 땅에서 잘 견디는 자동차, 어지간해서는 미끄러지지 않는 자동차, 설령 사고가 나더라도 크게 상하지 않는 자동차, 무엇보다도 운전자와 동승자들을 잘 보호해 줄 수 있는 안전한 자동차를 꿈꿨다.

그런 꿈을 꿨기에 세계 최초로 삼각 안전벨트를 개발했다.

측면 충격보호 시스템도 개발했다.

차유리가 깨지더라도 그 파편이 사람을 찌르지 않고 산산이 부서지게 하는 안전유리를 개발하였다.

누가 보더라도 가장 안전한 자동차라는 인상을 남겼다.




그들은 자동차 회사의 이름을 ‘볼보(Volvo)’로 지었다.

라틴어로 ‘내가 달려간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자동차가 달려가는 게 아니라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달려가겠다는 것이다.

회사를 책임진 사람들이 달려가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볼보 회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교대를 하면서 하루 스물네 시간 동안 비상근무를 한다.

그들의 업무는 교통사고 조사이다.

볼보자동차와 관련된 교통사고가 일어나면 그 현장으로 달려간다.

사진을 찍고 운전자와 면담을 하고 다친 사람의 병원 기록과 경찰 조서까지 모으고 부서진 자동차를 실험실로 옮긴다.

다시는 그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연구하고 수정보완하고 개발한다.

자동차만 달리는 게 아니라 사람도 달려간다.

그리고 안전하게 자동차가 달릴 수 있게 만든다.

나는 빨리 달리는 자동차보다 안전한 자동차가 좋다.

우리 사회도, 우리나라도 빨리 가는 것보다 안전하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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