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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06. 2023

내 성격은 내가 선택한다

오랜만에 교회 집사님의 딸을 봤다.

중학교 3학년 내 아들과 동갑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주 쾌활하고 생기발랄한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깜짝 놀랐다.

만약 집사님이 옆에 있지 않았다면 누구인지 몰랐을 것 같다.

얼굴을 한참 뜯어보아야 그 아이인 줄 알 것 같았다.

얌전하게 부모 옆에 서 있었는데 부끄러움 많은 아가씨처럼 보였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생각하며 많이 얌전해졌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랬더니 집사님이 어렸을 때에 비해서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사람이 변했다고 해야 하나?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나이만 늘어난 게 아니다.

키만 큰 게 아니다.

그 아이의 마음의 넓이도 넓어졌다.

마음의 깊이도 깊어졌다.

그래서 말 한마디도 삼가는 것일 테다.

행동 하나도 조심하는 것일 텐다.

자신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려고 하는 것일 테다.




어렸을 때에야 방방 뛰어다녀도 주변 사람들이 너그러이 대해준다.

아이들은 실컷 뛰고 떠들어야 한다며 오히려 더 응원한다.

하지만 중학생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닌다면 주변 사람들이 견디지 못한다.

좀 가만히 있으라고 야단을 친다.

아니, 야단을 치는 사람은 그나마 용감한 사람이다.

중학생들이 소리 지르며 뛰어다닌다면 무서워서 그 자리를 피한다.

그게 현명한 사람이다.

그 나이의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무슨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괜히 그 일에 얽히고 싶지 않으면 빨리 그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이 의아할 수도 있다.

몇 년 전에는 귀엽다고 예쁘다고 실컷 뛰어놀라고 응원을 해 주셨던 분들이 이제는 무섭다고,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야단을 친다.

아이는 똑같이 행동하려는데 아이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달라졌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모습을 경험한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언행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려면 말과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한다.

어떤 아이는 목소리를 크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려고 하고 어떤 아이는 목소리를 내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려 한다.

이렇게 해야 할지 저렇게 해야 할지 그건 아이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수위 조절을 한다.

그런 선택과 조절들이 쌓이고 쌓여서 그 아이만의 독특한 특징이 된다.

우리는 그 독특한 특징을 그 아이의 성격이라고 한다.

가림막을 치고 목소리만 듣는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인 줄 알 수 있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고 걸어가는 모습만 보여준다고 해도 그 아이인 줄 알 수 있다.

말에도 걸음걸이에도 그 아이의 성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성격은 고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화석화되어 딱딱하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굳어진 부위를 도려낼 수도 없으니 그냥 성격대로 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라고도 한다.

부모의 성격을 아이가 물려받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20세기 최고의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이렇게 하는 게 좋은지 저렇게 하는 게 좋은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 선택의 결과로 성격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성격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바꿀 수 있다.

외향적인 성격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내향적이었던 사람이 외형적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그 사람의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어떻게 달라졌냐고? 그가 그런 성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 성격은 내가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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