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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11. 2023

매일 글 쓰는 일의 위대함

 

하루 한 편의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3년 반 정도 되었다.

최근에 와서 조금씩 빼먹는 날이 있지만 그래도 마음으로는 글을 쓰고 있다.

단지 손이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매일 글을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주 잠깐이지만.

글을 쓰는 데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 자신과의 약속일뿐이다.

그날그날 내가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서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정리하려는 것뿐이다.

어쩌면 나의 글쓰기는 나의 일기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어렸을 때의 일기를 생각해 보면 매우 단순했다.

오늘은 맑았다.

몇 시에 누구와 놀았다.

공부했다.

집안일 했다.

텔레비전 봤다.

이런 시시콜콜한 내용들이었다.

눈여겨 볼만한 내용이 아무것도 없었다.

소모적인 일 같았다.

그러나 그 소모적이고 시시콜콜한 내용 중에서 누군가는 놀라운 것들을 발견한다.

내가 살아왔던 세상을 보게 된다.

그게 역사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책으로 펴내기 위해서 기록한 글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도 아니다.

단지 이순신 장군이 그날그날의 근황을 기록한 글이었다.

그런데 <난중일기>를 보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상황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죽음이 두려워서 도망치는 병사도 있었고 배가 고파서 여염집에서 음식을 도둑질하는 병사도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군령이 얼마나 엄격했는지 ‘오늘은 누구를 베었다.’라는 표현이 여럿 등장한다.

‘베었다’라는 한 단어를 썼을 뿐이다.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목소리와 군령을 받들어 비장한 각오로 칼을 휘두르는 병사들의 마음은 생략했다.

아울러 병사 한 명이 아까운 때인데 자기 손으로 처단해야만 하는 장군의 마음도 생략했다.

자기만 보면 되는 일기였기에 굳이 자신의 마음까지 다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난중일기>에서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네덜란드 태생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일기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쓴 글이 아니다.

나치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숨어 지내던 어린 소녀가 선물로 받은 공책을 친구로 삼아 그 공책에 하고 싶은 말들을 구구절절 적어 놓은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 이야기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이야기였고 매일 반복되는 상황을 적은 것뿐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안네의 일기>를 보면서 그 당시 나치 독일이 얼마나 악랄했으며, 유태인들이 겪어야 했던 공포와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마 안네 프랑크가 잡히지 않고 살았더라면 자신의 일기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열다섯 살 어린 소녀가 끄적거리며 쓴 글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네의 일기>를 통해 깨닫게 된다.

매일 쓰는 글의 힘이다.




1966년 1월 4일부터 일본의 미술가인 온 카라와(On Kawara)는 그날그날의 그림을 그렸다.

아주 단순한 그림이었다.

‘몇 년 몇 월 며칠’만 그린 것이다.

특징이 있다면 자신이 머물고 있는 국가의 언어로 표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그림 같지 않은 그림과 함께 그날의 신문 중에서 큰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기사 하나를 스크랩해 두었다.

그런데 이 일을 카라와는 무려 48년(2014년까지) 동안 이어갔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간 것이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오늘>이라는 작품은 단순한 미술작품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 일상이라고 하는 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일,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일, 그런 일들이 모여서 위대한 작품이 되고 놀라운 역사가 된다.

매일 글 쓰는 일이 하찮게 보이더라도, 

독특한 내용이나 특별한 감동을 주지 못하더라도, 

나는 오늘도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고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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