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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19. 2023

잔치국수 한 그릇 먹고 싶은 밤


나는 국수를 무척 좋아한다.

국수뿐만 아니라 면 종류는 다 좋아한다.

라면도 좋아하고 우동도 좋아하고 쌀국수도 좋아하고 스파게티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면은 누가 뭐래도 잔치국수이다.

멸치를 푹 우려낸 뜨끈한 국물에 가는 면발, 그 위에 다진 야채와 달걀지단이 곁들여지면 최고의 잔치국수가 된다.

젓가락으로 몇 번 휘젓다가 입으로 호로록 빨아들인다.

국물은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서 먹을 때보다 국수 그릇 채 입으로 후루룩 들이킬 때가 더 맛있다.

입가심으로 배추김치 한 점을 먹고 트림 한 번 하면 한 끼 식사가 끝난다.

잔치국수라는 이 기막힌 음식을 누가 개발했는지 알 수 있다면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열 번도 스무 번도 더 했을 것이다.

지금은 국민 분식 중의 하나로서 저렴한 가격에 한 그릇 먹을 수 있지만 잔칫날 국수를 대접했다면 과거 언젠가는 국수가 굉장히 귀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하기는 내가 어렸을 때는 라면도 귀한 음식이었다.

아직 보릿고개를 넘지 못했던 시절에 밥 대신에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먹거리로 개발한 게 우리의 라면이었다.

1963년에 첫선을 보인 삼양라면은 일본의 라멘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당시에는 한 봉지에 10원이었지만 내 어릴 적에는 100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싼 가격일 것 같지만 그때는 100원이라고 하면 절대로 싼 가격이 아니었다.

그래서 라면을 먹는다는 것은 어머니께서 특별히 후한 인심을 쓰셔야만 가능했다.

그랬던 라면도 이제는 가장 저렴한 음식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상전벽해라는 말은 굳이 뽕나무밭에 가서 확인할 필요가 없다.

라면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다.

그만큼 우리가 잘살게 되었다.

그러나 라면이 아무리 값싼 음식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입은 여전히 라면을 보면 군침을 삼킨다.

그 쫄깃쫄깃한 면발이 유혹을 하기 때문이다.




면발에 대한 유혹은 우리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나 비슷하다.

단지 우리처럼 면발이 국물에 풍덩 빠져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인 것 같다.

동양의 면은 주로 국물과 함께 요리된다.

반면 서양의 면은 주로 소스에 버무리는 스파게티 형태다.

그 이유가 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국물 문화가 발달되었는데 서양에서는 볶아서 먹든지 삶아서 먹든지 구워서 먹는 문화가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동양은 쌀을 주식으로 한 반면에 서양은 밀을 주식으로 했다는 것도 차이가 있다.

쌀로 밥을 지어먹는 동양에서는 자연스럽게 국물을 찾게 되었지만 밀을 빻아서 빵을 구워 먹는 서양에서는 국물이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쌀을 빻아서 가루를 만든다는 생각이 거의 없었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밀을 빻아서 가루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밀가루로 반죽을 하다 보니까 가락이 생기게 되었다.




만약 서양의 밀가루 가락이 그들만의 음식으로만 자리매김했다면 절대로 국수나 라면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서양의 밀가루 가락이 동양으로 전해져서 동양의 국물을 만나가 되니까 잔치국수가 나왔고 라면이 나왔고 우동이 나왔고 쌀국수가 나왔다.

서양의 밀가루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동양의 국물도 나름대로 훌륭했다.

각자 그것만 먹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서로가 자신의 것을 주고 상대방의 것을 받으니까 새로운 것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지금의 서울대학교인 경성제국대학을 다닐 정도로 똑똑했지만 평범한 농사꾼으로 살다 간 전우익 선생이 생각난다.

선생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는 책 제목이 떠오른다.

혼자만 살아서는 재미가 없는 세상이다.

같이 어우러져야 재밌는 세상이 된다.

같이 어우러져야 잔치국수도 나오고 라면도 나온다.

잔치국수 한 그릇 먹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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