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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2. 2023

모든 삶은 기적이다


스물두 살 때 잠깐 보육원 봉사활동을 했었다.

봉사활동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매주 토요일 저녁에 아이들과 한 시간 정도 놀아주는 거였다.

내가 마음이 착해서 그랬던 게 아니다.

친구 따라 얼떨결에 가게 된 거였다.

보육원에 있는 아이라고 해서 딱히 티가 나지는 않았다.

그 아이들도 누군가 자기와 놀아주면 해맑게 웃고 즐거워했고 헤어질 시간이 되면 아쉬운 눈빛을 보냈다.

이 세상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보육원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여기부터 보육원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내 마음이 달라졌던 것이다.

마음이 달라지니까 공기도 다른 것 같았다.

보육원 정문 밖의 공기와 보육원 정문 안의 공기가 다를 수가 없을 텐데 나에게는 다르게 느껴졌다.

그건 보육원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이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나의 편견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보육원 아이들을 대하면서 내가 가졌던 가장 큰 편견은 ‘얘들이 과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였다.

아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밀어주고 끌어줘야 하는데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을 뒷바라지해 줄 부모가 없었다.

물론 그중에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부모라는 분들은 1년에 한두 번 찾아와서 잠깐 아이를 만나고 갈 뿐이었다.

보육원 아이들도 대학 진학을 꿈꿨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는 그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대학 진학 자체가 꿈이었다.

어느 학교에 가고 싶냐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그들은 보육원을 나가야 했다.

당장 밤을 지새울 수 있는 방이 필요했다.

정부에서 보조금을 조금 준다고 했다.

그 돈으로 네댓 명이 방 하나를 빌려서 같이 지낸다.

그러다가 한 명씩 독립을 한다.

그들에게는 대학 진학보다 생존이 더 급했다.




내 짧은 머리로는 그들의 인생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사회적인 낙오자가 될 것만 같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런 용을 본 적이 있었나?

용을 본 적이 없으니 용이 개천에서 나오는지 바다에서 나오는지는 알 턱이 없다.

스물두 살 때 내가 만났었던 보육원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냥 내 바람인데 어디에서든 이 악물고 견디면서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기적이란 게 뭐 따로 있나?

어제를 살아냈으면 기적이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면 기적 아닌가?

힘에 부친 일인데도 끙끙대면서 그 일을 하고 있으면 기적이 아닐까?

하늘이 부르는 날까지 견디고 또 견디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기적 아닐까?

하루 또 하루 살고 한 번 또 한 번 견디다 보면 기적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하지 않을까?

기적은 남에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닐까?




7살 때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가 있었다.

보육원에서 남들의 도움으로 자랐다.

스무 살 때 자신을 깊이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곧 아이를 낳았다.

기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뇌출혈로 사망했다.

겨우 잡은 희망의 끈이 다시 끊겼다.

술에 의지해서 살았다.

그러다가 “엄마, 엄마” 부르는 아기의 소리를 듣고 다시 살기로 결심했다.

10년 동안 정신분석 상담을 받으며 자신을 먼저 돌봤다.

자기가 건강해야 뭐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기적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자신과 같은 사람을 돌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마흔여덟 살에 대학에 들어가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심리상담소를 열었고 1주일에 한 번 여는 심리학 카페를 열었다.

18년 동안 5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다.

<파리의 심리학 카페> 주인공 모드 르안(Maud Lehanne)의 기적 같은 이야기이다.

모든 삶은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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