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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9. 2023

어려운 러시아 문학을 끝까지 읽기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면 종종 ‘왜 나는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다 잘 넘어가는 것 같은데 나만 넘어가지 못하는 것 같다.

남들은 잘 이해하는 것 같은데 나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 그 책의 내용이 몇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져야 하는데 러시아 소설책은 그게 쉽지 않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감이 안 잡힐 때도 많다.

책을 끝까지 읽었을 때에야 전체적으로 ‘이런 사건을 다룬 책이구나!’하는 느낌만 갖게 되기도 한다.

가령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 안나 카레니나가 우연히 찾아온 사랑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사랑을 갈구하다가 결국 사랑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정도만 기억한다.

누가 그 책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다.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여겨진다.

며칠 지나고 나면 과연 그 책을 읽었는지 헷갈리기조차 한다.




책 한 권 한 권에 대한 감상과 평을 내리는 사람들을 보면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일한 책을 읽었는데 어떻게 그 사람들은 그 책에서 그런 감상평을 내릴 수 있는지 신기할 뿐이다.

나는 책을 읽다가 종종 방향을 잃기도 한다.

내가 지금 내용을 읽고 있는지 전혀 모를 때가 있다.

그래서 몇 페이지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다시 읽어도 결과는 비슷하다.

특히 러시아 문학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이 보통 두 개 혹은 세 개로 바뀌는데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뀌면 내 머리도 리셋되는 느낌이다.

누구의 이야기를 읽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는 등장인물들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자세히 적어두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조직도를 그려보는 것도 필요하다.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는 이런 그림을 옆에 두고 읽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나름대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문학은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의 꾀를 하나 냈다.

그것은 책 뒤에 붙어 있는 부록편을 보는 거다.

문학평론가들이 정리한 작품해설서를 읽어보는 것이다.

때로는 번역자가 책 내용을 요약해서 부록편에 실어두기도 한다.

문학평론가라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수준보다 훨씬 나은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작품해설서를 보면 그 책을 쓰던 당시에 작가의 생활이 어땠는지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작가의 삶이 작가의 글이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상관이 매우 깊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작품은 작가가 낳은 아기와 같기 때문이다.

임산부의 말과 행동이 태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한다.

마찬가지로 작가의 삶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작가의 삶을 알아보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하다.




이번에 읽고 있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미성년>이라는 책은 나에게 러시아 문학의 어려움을 고스란히 안겨주고 있다.

벌써 며칠째 들춰보고 있지만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분명히 어젯밤에 읽었는데 아침에 보니 읽은 부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려서 누구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어쩔 수 없이 책 뒤에 있는 부록편을 봤다.

그런데 거기서 놀라운 내용을 발견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미성년>은 너무 산만하게 서술된 책이어서 독자들은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는 평이 있었다.

도스또예프스끼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기술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내용이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무식해서 책을 읽어도 몰랐던 게 아니었다.

내가 집중을 하지 못해서 책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원래 책 자체가 어려웠다.

이런 위안을 받고 끝까지 읽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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