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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3. 2023

좋은 책을 써도 삶이 따라가 주지 않는다면...


노르웨이의 작가 크누트 함순의 <땅의 혜택>이란 소설은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외치는 것 같다.

아무도 살지 않는 숲속 깊은 곳에 들어가는 한 남자가 있었다.

노르웨이의 숲속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무뚝뚝한 얼굴의 이사크라는 남자이다.

그가 걸어간 발자국을 따라 길이 생겼다.

그의 손을 거쳐 움막집이 지어졌다.

염소를 치고 감자밭을 일구고 숲에서 나무를 잘랐다.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 잘 말린 후 산 아랫마을에서 가지고 가면 좋은 값에 팔렸다.

일거리가 늘어가면서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녀 한 명 구할 수 있냐고 소문을 내며 다녔는데 어느 날 잉게르라는 여자가 나타났다.

입술이 찢어진 언청이였지만 성품이 고왔고 일도 잘했다.

잉게르가 온 후 이사크의 재산은 갈수록 늘어났다.

잉게르가 양도 가져오고 소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림도 엄청 잘했다.

뿐만 아니라 둘 사이에 아기도 생겼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글로 글려진다.

소박한 농사꾼의 삶이었지만 점점 거부가 되어가는 이사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모든 혜택은 땅으로부터 나왔다.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황무지와 같은 땅인데 이사크의 손을 거치면서 그 땅이 축복의 땅이 되었다.

보기 좋게 변한 땅은 또한 보답을 하듯이 이사크에게 복을 주었다.

이렇게 이사크와 땅 사이는 서로 복을 주고받는 선순환의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아이가 둘이 되고 셋이 된다.

물론 불미스러운 일들도 발생한다.

하지만 묵묵히 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복잡한 일들도 정리가 된다.

숲속에서 땅과 함께 살아가는 이사크의 삶과는 달리 아들 엘레세우스는 도시에서의 삶을 전전하다가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숱한 사람들도 이사크 곁에 왔다가 떠나간다.

그들은 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책을 읽는 내내 자연을 사랑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목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책을 꼽으라면 당연히 이 책 <땅의 혜택>을 꼽을 것이다.

기계문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니 땅과 숲과 자연을 이야기하는 일이 거의 없다.

설령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자연스럽게 환경 파괴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크누트 함순은 아주 편안한 문체로 자연을 노래하였다.

호들갑을 떨지도 않았다.

그의 글은 입이 무거운 노르웨이 남자처럼 호흡이 짧다.

그러나 여운은 길게 간다.

긴 시간 동안 담가두었던 묵은지를 꺼내 먹는 기분 같다.

저물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면서 오래 앉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람도 사랑할 것이다.

192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딱 제격인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10년이 지났을 때 크누트 함순은 나치 신봉자가 되었다.

히틀러를 찬양하였다.

잠깐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서 그랬을 것이라며 그를 감싸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책을 다 읽고서 작가 연보를 들춰보는데 노년의 크누트 함순에 대해서 독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노년에 쓴 그의 책들도 인기가 없었다.

한때 정치적인 격랑 속에서 그가 선택한 길 때문에 그는 독자들의 냉혹한 평가를 받게 되었다.

차라리 더 이상 나이 들지 않고 1920년에 그냥 머물렀으면 좋았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작가들이 많다.

한때 우리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는데 변절한 자들, 매국한 자들, 친일한 한 자들이 많다.

좋은 책을 써도 삶이 따라가 주지 않는다면 그 좋은 책도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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