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의 기다림, 29년의 꿈

by 박은석

엘지 트윈스가 2023년 한국프로야구 KBO리그에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1994년 시즌 우승 이후 29년 만이다.

그동안 시즌이 시작할 때면 번번이 우승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시즌 중후반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순위가 뒤로 밀렸다.

10개 팀 중에서 7위 언저리에 머물곤 했기에 ‘칠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엘지 트윈스 선수 출신인 김재박 감독은 “떨어질 팀은 떨어진다(Down Team Down)이란 말로 엘지 트윈스를 깎아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이 오랫동안 들어맞기도 했다.

엘지의 저주, 잠실의 저주가 있는 것 같았다.

엘지 트윈스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유망주들은 다른 팀으로 방출됨과 동시에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시즌 200안타의 대기록을 세운 서건창, 홀런왕 박병호가 대표적이었고 그 외에도 다른 팀에서 주전 자리를 꿰찬 선수들이 많다.

엘지만 떠나면 잘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엘지는 외국인 선수 영입에서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페타지니는 괜찮았지만 거의 모든 외국인 타자들이 시즌 중반에 부상으로 떨어져 나갔다.

아니면 한국 야구에 적응하지 못한 채 형편없이 무너져 내렸다.

넓은 잠실구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공격보다 수비가 더 나아야 한다는 주장을 많이 했다.

장타력을 갖춘 힘 좋은 타자보다 발이 빠른 타자가 훨씬 낫다는 말도 많았다.

일면 납득이 되었지만 한 지붕 아래 있는 두산 베어스는 엘지 트윈스와 정반대의 색깔을 지닌 팀인데 오히려 잠실구장에 더 잘맞는 팀처럼 여겨졌다.

두산 베어스가 여러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동안 엘지 트윈스는 부러운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내 아내도 나에게 잘하는 팀을 응원하라고 약 올리기도 했었다.

엘지 트윈스가 좋은 성적을 거둘 때면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는 듯이 쳐다보기도 했다.

그랬던 엘지가 자신의 힘으로 정상에 우뚝 섰다.




29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가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았고 그중의 한 아이인 아들이 엘지 트윈스의 팬이 되었다.

나보다 더 열혈 팬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 저 뜨거운 청춘의 나이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우승팀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엘지 트윈스가 시즌 우승하는 그 역사의 한복판에 내 아들이 있다.

아들에게 학원을 제끼고 경기장으로 가자고 했다.

아내는 텔레비전으로 봐도 되지 않냐고 하는데 그건 정말 모르는 말이다.

텔레비전으로 보는 게 더 선명하고 자세히 볼 수 있겠지만 경기장에서의 감동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오늘은 잠실 홈구장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한다는 소문도 있다.

경기 관람표는 일찌감치 동이 났다.

취소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암표상들은 2만원짜리 티켓을 20만원에 판다고 한다.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파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기적처럼 표를 얻었다.




학원 대신 야구장에 온 아들의 얼굴이 밝다.

비록 후미진 자리에 앉았지만 자리는 상관없다.

경기장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라 있기에 이런 날은 화장실에서도 축제 분위기다.

시즌 우승을 확정지었으니 편안하게 경기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선수들은 끝까지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팬들도 끝까지 우리 팀이 이기기를 기대하며 목소리 높여 응원할 것이다.

아직 시즌이 끝나려면 몇 경기를 더 치러야 한다.

그중의 절반 이상만 이기면 시즌 최다 승리라는 또 하나의 대기록이 세워진다.

내친김에 그 기록까지 깼으면 좋겠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온다.

쥐구멍에 볕 들 날이라는 기적과도 같은 날 말이다.

29년의 기다림, 29년의 바람, 29년의 꿈이 이루어졌다.

포기하지 않고 견뎠더니 이런 날이 왔다.

야구만 이런 게 아닐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