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컵 축구대회의 시리아 대 호주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객관적인 전력은 호주가 월등히 앞선다.
충분히 납득이 된다.
수십 년 동안 계속되는 내전을 겪는 시리아에서 운동선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든든하게 후원해주는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선수들을 밀어주지도 못한다.
반면에 호주처럼 안정된 나라에서는 운동이 평생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유명 운동선수들의 연봉은 일반 직장인의 몇 년 치 연봉과 맞먹는다.
하지만 우리가 가난했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그때는 배가 고파서 운동을 했다는 이들이 많았다.
1996년 서울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이었던 임춘애 선수는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라면밖에 없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기자들은 앞뒤 말은 빼고 라면만 먹고 뛰었다는 기사를 냈다.
‘라면소녀’의 탄생이었다.
가난한 나라인 시리아가 부자 나라인 호주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은근히 시리아를 응원하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 경기를 지켜보는 시리아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시리아가 골을 넣어서 호주를 이기는 것이 기적이고 희망일 것이다.
그런 기적과 희망을 선물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예측대로 호주가 이겼다.
얼떨결에 한 골 먹고 시리아가 졌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시리아에 희망은 오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 고개를 숙이며 운동장을 나가는 시리아 선수들이 애처로워 보였다.
‘뭘 해도 안 되는구나!’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기죽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고 싶었다.
경기에 패하더라도 희망을 잃지는 말라고, 이기는 것만이 승리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미 그들에게는 그런 살을 보여준 인물이 있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더 스위머스>라는 영화가 있다.
시리아의 수영선수인 유스라 마르디니의 이야기이다.
국가대표 출신인 아버지 밑에서 언니 사라 마르디니와 동생 유스라 마르디니는 수영 훈련을 받았다.
그들의 꿈은 시리아 국가대표이다.
하지만 전쟁 때문에 시리아에서는 더 이상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두 자매는 무작정 독일로 향했다.
튀르키예를 지나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야 했다.
하지만 보트가 고장이 나고 말았다.
몰래 유럽으로 밀입국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트에 올라탄 영향이 컸을 것이다.
침몰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때 마르디니 자매는 보트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려고 물에 뛰어들었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보트를 밀면서 헤엄을 쳐서 가까스로 육지에 도착했다.
18명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 후 그들은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헝가리를 거쳐 드디어 독일에 도착했다.
독일 난민 캠프에 도착한 유스라 마르디니는 수영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수영 클럽에 가서 간곡히 사정하였다.
꿈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 생긴다.
마침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난민팀(Refugee Olympic Team.
ROT)을 만들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덕분에 마르디니는 꿈에 그리던 올림픽 선수가 되었다.
비록 시리아의 국기를 가슴에 단 게 아니라 난민팀의 일원으로 오륜기를 가슴에 달고 나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마르디니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여자 접영 100m 예선에서 45명 중 41위를 했다.
거의 꼴찌로 예선 탈락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르디니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사람들은 1등을 한 선수에게서는 금메달을 보았지만 예선 탈락한 마르디니에게서는 희망을 보았다.
패배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패배가 희망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