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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9. 2023

인생은 지식으로 사는 게 아니라 지혜로 사는 것이다


아들과 함께 이불보를 끼웠다.

전에는 내가 혼자서 했는데 아들에게 가르쳐줘야 할 것 같아서 같이 하자고 했다.

순순히 따라주었다.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처음 맞닥뜨리는 아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해 보라고 해도 될 일이었다.

어찌어찌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시범을 보여준다면 훨씬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 방법을 택했다.

아들과 함께 이불보를 끼워 넣었다.

아들은 쉽게 배웠다.

이불보를 다 끼우고 나서 다음부터는 아들에게 혼자서 하라고 했다.

다음부터는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들은 나에게서 생활의 지혜를 하나 얻었다.

대단한 지식을 얻은 것은 아니다.

돈이 되는 지식도 아니다.

몰라도 상관없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유익하게 쓸 수 있는 지식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배우는 것들, 딸이 어머니에게서 배우는 것들은 특별한 것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니다.

소소한 것들이다.

어떻게 하면 요령껏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실수하지 않고 제때에 처리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좋게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방법들이다.

학교에서는 이런 것들을 알려주지 않는다.

학교에서 알려주는 것들은 고상한 지식들이다.

학교에서는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장을 가진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지식들을 가르친다.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부딪힐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와 같은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자질구레할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맨투맨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줘야 한다.




세상이 요동을 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필요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고, 학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면 되는 세상이다.

그것도 모르겠으면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보면 되고, 인터넷 구글링을 통해 알아보면 되는 세상이다.

옆에서 부모가 “내가 알려줄까?”라며 한마디 거들면 그냥 가만히 계시라는 말을 듣는 세상이 되었다.

전문가가 있으니까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된다고 한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인생을 살아갈 때 필요한 거의 모든 지식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주었다.

언제 씨를 뿌려야 하는지, 언제 김매기를 하고, 언제 추수를 해야 하는지 경제활동의 모든 것을 부모가 가르쳐주었다.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하고 어떻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지도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 주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부모에게서 나왔다.




부모의 가장 큰 역할은 자녀에게 잘 가르쳐 주는 일이다.

자녀 입장에서는 자신을 가르쳐줄 부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를 지닌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하늘이 무너졌다며 ‘천붕(天崩)’이라고 했다.

부모님 없는 하늘 아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심경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에게서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졌다.

오히려 부모가 자녀에게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엄마는 그것도 몰랐냐는 말을 너무나 쉽게 내뱉는다.

아빠는 모르면 가만히 계시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쳤는데 요즘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어봐야 한다.

컴퓨터는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스마트폰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자존심을 죽이면서 자녀에게 물어보는 시대이다.

안타깝다.

인생은 지식으로 사는 게 아니라 지혜로 사는 것인데 그걸 너무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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