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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1. 2023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


얼마 전에 신문 기사를 읽다가 울컥했던 적이 있다.

야구 선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응원하는 엘지트윈스팀의 투수에 대한 기사였다.

선발투수도 아니고 마무리투수도 아닌 중간 계투 투수에 대한 기사였다.

계투 투수들은 보통 6, 7, 8회에 등판에서 1~2이닝 정도를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간다.

1~2이닝 동안 던지고 다음 투수에게 공을 넘겨줄 때까지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면 ‘홀드’라는 기록을 얻게 된다.

고작 1~2이닝을 던지는 건데 그게 중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야구에서는 엄청 중요한 일이다.

선발투수는 5회 정도를 던진다.

마무리투수는 보통 9회에 등판한다.

그렇다면 선발투수와 마무리투수 사이의 6, 7, 8회를 맡아주어야 할 투수가 필요하다.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면 역전당하지 말아야 하고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실점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이게 중간계투 선수들의 운명이다.




올해 엘지트윈스의 중간계투 선수로 가장 많이 등판한 투수는 김진성 선수이다.

솔직히 나는 김진성 선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관람하던 경기에서는 김진성 선수가 등판했을 때, 꼭 1~2점의 점수를 상대팀에게 내주곤 했다.

나이도 많았다.

야구선수는 30대 중반이면 은퇴를 고민한다.

김진성 선수는 딱 그 나이대였다.

이런 선수를 왜 영입했을까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엘지 트윈스는 자타가 인정하는 투수가 강한 팀이다.

젊고 패기 넘치는 투수들이 많다.

그런데 30대 후반의 저물어가는 투수를 영입했다.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SK와이번스와 NC다이노스팀에서 뛰었던 선수였다.

하지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는지 팀에서 방출했다.

그런 선수를 엘지트윈스가 맞아들인 것이다.

김진성 선수는 2022년 시즌을 앞두고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을 것이다.

어떤 팀도 그를 불러주지 않았던 것이다.     

야구를 그만두기가 싫었다.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얻고 싶었다.

텅 빈 운동장에서 혼자 훈련을 하면서 몸을 다졌다.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단장과 감독에게 메일을 보냈다.

테스트를 할 기회라도 달라는 간청이었다.

여러 팀에서 연락이 왔다.

팀의 형편상 김진성 선수를 고려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필요하지 않은 선수라는 말이었다.

이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한다.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런데 김진성 선수는 마지막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도전하고 또 도전했다.

그때 엘지트윈스팀의 단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야구 인생으로 보면 대선배였다.

김진성 선수는 엘지트윈스팀의 차명석 단장에게 테스트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자신의 공을 보고서 선택하든 말든 결정해 달라고 했다.

한 번만이라도 공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말이었다.

그때 차명석 단장이 김진성 선수에게 한마디 했다.

야구 인생 선배로서 후배에게 대놓고 한 말이었다.

“야! 네가 김진성인데 무슨 테스트가 필요하냐? 그냥 와라!”라는 말이었다.

그때 김진성 선수는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고 했다.

아마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을 것이다.

 살다 보면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 자신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처럼 여겨진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것 같다.

그래서 나 자신의 자존감도 약해진다.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네가 박은석 아니냐? 무슨 테스트가 필요하냐?”라는 말을 해 준다면 내 마음이 하늘을 날아다닐 것 같다.

2023시즌 KBO리그에서 엘지트윈스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김진성 선수가 중간계투의 역할을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 나는 나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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