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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6. 2023

동네 가게가 살아야 국가가 산다


집 앞에 있었던 편의점이 문을 닫았다.

먹자골목 한 모퉁이에 있어서 장사도 꽤 잘 되던 편의점이었다.

어쩌다가 편의점을 열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는데 사장님은 이런 일을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처럼 보였다.

알바생을 몇 명 쓰면서 일을 했는데 가끔 알바생이 결근을 하면 사장님이 밤에도 편의점을 지켰다.

애매한 시간대에 들르면 이제 갓 유통기한을 넘긴 삼각김밥 같은 것이 있다며 불쾌하지 않으면 가지고 가라고 했던 적도 많았다.

나로서는 불쾌할 일이 전혀 없다.

맛있기만 했다.

편의점이 잘 되는 줄만 알았다.

사장님은 편의점에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무인 정산하는 아이스크림 가게도 열었다.

이러다가 우리 골목의 편의점을 다 장악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살살 하라고 농담도 했었다.

그런 편의점이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편의점 사장님이 한숨을 쉬면서 10월까지만 편의점을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특성상 계약 갱신이 안 되었던 것이다.

본사에서는 분명 엄청난 압력을 가했을 것이다.

더 많은 물건, 더 다양한 물건을 진열하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사장님은 더 이상 그 프랜차이즈 업체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5년 정도 정들었던 가게를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엊그제 무심코 편의점에 갔는데 가게의 전깃불을 꺼져 있었고 출입문은 자전거 바퀴 잠금줄로 굳게 잠겨 있었다.

사장님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가게는 끝장나고 말았다.

출입문 옆에 자그마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곧 새단장을 해서 만나자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본사에서 그 가게를 인수해서 본사 직영매장으로 운영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본사에서 직접 돈을 벌려고 나선 것이다.




전에는 동네 사람이 편의점을 운영하니까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고 싶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운영하는 것이었다면 그 편의점에 정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건을 고르고 계산만 하고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동네 사람이 운영하니까 괜히 인사도 하게 되고 이 편의점이 다른 편의점보다 장사가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 후부터는 본사에서 사람을 보내서 장사를 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물론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모질다.

본사라고 하는 거대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일개의 소시민인 동네 사장님을 내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단장을 해서 곧 찾아뵙겠다고 쓰인 현수막이 괜히 얄밉게 보였다.

정들었던 우리 동네 사장님을 쫓아내는 악덕 기업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동네 가게가 살아야 국가가 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잘 되려면 반드시 우리 동네 가게들이 잘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급적 동네 가게들을 이용하려고 한다.

대형마트에 가기보다는 편의점을 가고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기보다는 동네 카페를 가려고 한다.

이런 나의 쪼잔한 방법으로 동네 가게를 살릴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간다면 동네 상권은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물품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그 대안으로 ‘물산장려운동’이 일어났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우리 것을 지키자는 운동이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우리 물건을 사 줘야 백성들 모두의 형편이 나아진다는 가르침을 주었던 운동이었다.

오늘날에도 이 운동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동네 가게 살리기 운동으로! 편의점 사장님이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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