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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30. 2020

나의 삶을 지켜나가자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상을 살고 있다. 어딘가에서 불쑥 전염병 바이러스가 내 몸에 와 닿을 것 같아서 잔뜩 긴장하면서 지내고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인류의 문화와 가치관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앞날에 대한 예측을 할 수가 없는 불안한 마음이 매일 엄습한다. 전염병이 창궐했던 시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역사상 가장 무서운 전염병으로 평가받는 1347년부터 1350년 사이의 페스트 전염병은 유럽에서만 약 3천만 명이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질병에 걸리면 몸이 검게 변하다가 죽는다고 해서 ‘흑사병(黑死病)’으로 불렸는데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다 시커멓게 보였을 것이다.      


페스트는 신분 고하를 따지지 않았다. 힘 있는 영주도, 용감한 기사도, 신앙심 깊은 성직자도, 똑똑하고 지혜로운 지식인도,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도 모두 다 쓰러져갔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동학혁명이 지난 후 한반도에 콜레라 전염병이 창궐하여 마을마다 줄초상을 당하였다. 소설의 주인공인 최서희도 이때 할머니를 잃었다. 질병의 이름도, 원인도, 치료방법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잘못된 종교적 신념이다. 그래서 페스트 시대에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에 가면 병이 나을 줄 알고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었다. 한반도의 최서희 동네에서는 유명하다는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했다. 그 결과 전염병은 오히려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다.     


전염병이 얼마나 돌아야 사라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동안 겪게 될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몸과 마음이 온통 병이 든다. 그러나 그 엄청난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견뎌내야 한다. 때로는 피해서 도망을 치더라도, 문 꼭꼭 걸어 잠그고 스스로 격리하더라도 살아내야 한다. 생명은 한순간 사라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질기고 질긴 것이다. 그래서 살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든 산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견디다 보면 재난을 이기는 방법도 체득하게 되고 찬란한 문화도 꽃피우게 된다. 페스트가 지난 후 유럽 대륙이 영원히 황폐할 것만 같았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라는 거장들이 나타나서 세상을 이전보다 훨씬 아름답게 채색하였다.     


페스트 때문에 피렌체의 별장으로 피난 온 10명의 젊은이들이 10일 동안 지혜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반니 보카치오는 그 이야기들을 100가지로 정리해서 <데카메론>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작품이 바로 근대소설의 효시가 되었고 보카치오를 일약 ‘근대소설의 아버지’로 불리게 만들었다. 페스트가 다시 유행하던 1665년에 영국의 학교들은 2년간 휴교령을 내렸다. 캠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아이작 뉴턴도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자율학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기간에 미분, 적분, 광학프리즘의 원리와 만유인력의 법칙이 정립되었다. 옴짝달싹 못하던 시기에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삶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냈다. 답답한 현실이라고 비관하지 말자. 이 어둠의 터널 저편에는 밝은 세상이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묵묵히 나의 삶을 지켜나가자. 그러다 보면 놀랍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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