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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1. 2023

물건 판매자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고3 대입수험생인 딸아이가 얼마 전부터 내 헤드셋을 사용하고 있다.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 이어폰보다 헤드셋이 편한가 보다.

어떤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은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내 경험상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나도 학창시절에 조용한 분위기보다 살짝 시끄러운 분위기였을 때 집중이 더 잘 되었다.

물론 한밤중에 공부할 때는 라디오나 음악을 틀어놓곤 했다.

어쨌든 딸아이가 내 헤드셋을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나는 살짝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나도 음악을 듣거나 오디오북을 들을 때 헤드셋이 굉장히 유용하게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어폰도 좋기는 하다.

하지만 귓속에 이어폰을 꽂아놓는 것은 아무래도 귀를 상하게 할 것 같다.

헤드셋은 귀를 감싸주기 때문에 편안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 헤드셋을 잘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에게 뺏겼다.




대입수학능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벼르고 벼르다가 딸아이에게 헤드셋을 하나 선물해 주기로 했다.

내 딸은 성능보다 감성이 좋은 것을 택할 것이다.

그래서 비싼 헤드셋보다 이쁘장한 헤드셋으로 고르고 골랐다.

아이들 사회에서는 허접한 제품은 환영받지 못한다.

어느 정도 브랜드가 따라가 주어야 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한다면 딸아이보다 내가 한번 사용해보고 싶은 헤드셋을 골랐다.

마샬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메이저4라는 제품이다.

성능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딱 보기에도 감성은 만점이다.

작고 앙증맞은 게 내 딸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제품이다.

미국산 정품은 가격이 꽤 나가는데 중국에서 만드는 제품은 그보다 훨씬 저렴했다.

당연히 나는 중국에서 오는 제품을 택했다.

미국인들이 조립하든 중국인들이 조립하든 제품은 기계가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성능의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중국산을 택했다.




결재를 하고 느긋하게 며칠 기다릴 작정이었다.

물건은 수능일 며칠 전에 도착할 것 같았고 그러면 딸아이에게 깜짝 선물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뜬금없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판매자가 보낸 메시지였다.

구매해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배송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물건을 받으면 리뷰를 작성해달라는 부탁의 말도 있었다.

그러면 소정의 선물도 준다고 했다.

답장을 보내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고맙다고 하고는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쓰고 봤더니 답장의 글이 너무 짧은 것 같았다.

글이 짧으면 사람이 딱딱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몇 마디 더 보탰다.

고3 수험생을 위한 선물인데 수능 전까지 공부할 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정도의 메시지면 예의를 차린 것 같았다.

어차피 상술로 보낸 메시지니까 적당히 대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3분 후에 호들갑을 떠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어머머 그러셨군요...” 하면서 이모티콘까지 끼워 넣었다.

최대한 빨리 검수하고 꼼꼼하게 챙겨서 보내주겠다고 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인데 나한테 너무 큰 배려를 해주는 것 같았다.

장사꾼이니까 그냥 물건만 팔면 될 텐데 내 마음까지 읽어주려고 한다.

이것도 상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짧은 문자메시지가 사람의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 맞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것, 사소한 것, 짧은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감동을 주고 기분을 좋게 만든다.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누구나 실천하지는 못한다.

작은 것, 사소한 것, 짧은 것이라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크고 거창하고 긴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착각이다.

그런데 그 착각에 갇혀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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