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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by 박은석


친구가 있었다.

같은 강의실에서 같은 교수님에게 배웠다.

동기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지냈다.

졸업 후에도 서로 의지하며 지내자고 했다.

힘들 때면 형제처럼 다독여 줄 수 있는 모임도 하나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교정을 떠났고 각자의 세상으로 나갔다.

그는 더 많은 걸 공부했다.

모자가 하나, 둘 늘어났다.

꾸준히 꿈을 꾸며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

멀리서나마 응원을 했다.

10년 가까이 멀리 떠나 있었던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반가워했다.

돌아온 그의 모습은 많이 세련되어 있었다.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걸 배운 티가 났다.

연말이 되면 그에게서 안부 메시지가 왔다.

나는 일에 치여 생각도 못했는데 항상 그가 먼저 연락을 했다.

명절 때도 마찬가지였다.

동기들과 하나씩 연락이 끊겼지만 그의 이름과 연락처는 늘 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항상 ‘친구’라는 단어로 시작했다.




몇 년 전에 그가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잡나 싶었는데 막판에 무산되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안타까웠다.

다음에는 더 잘 준비해서 더 큰 꿈을 펼칠 수 있기를 바랐다.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 비록 흔들리기는 하더라도 넘어지지는 않기를 바랐다.

내가 안간힘을 쓰며 나의 삶을 견뎌 나갈 때 그도 비슷하게 안간힘을 쓰며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나에게 큰 위안을 주기도 했다.

나이가 더해가면서 나도 그도 번듯한 위치에서 자꾸만 밀려나는 것 같았다.

더럽게도 운이 없는 것인지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인지 기회가 우리를 비껴가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전화를 해서 서로 목소리를 확인해 보는 것으로 격려를 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위로가 되었다.

인생은 기니까 이렇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반듯하게 가다 보면 언젠가는 하늘이 감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달 전에도 그에게서 안부 메시지가 왔었다.

힘내라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그런데 엊그제 어느 모임에서 그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가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고 한다.

전에 그 회사를 맡았던 대표가 뒤로 밀려나고 그에게 권한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뒷이야기가 있다.

소문이 무성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렇게 물려줄 수도, 물려받을 수도 없다.

그의 회사가 그렇다.

아마 밖으로 새나가면 불편한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것을 막을 적임자가 그였던 것 같다.

‘이건 아닌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다.

왜 그런 방법을 택했냐고 알아보고도 싶었다.

꼭 그 대표 자리를 맡아야 하느냐고 따져보고도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온 인품은 어디로 간 것이며, 세상이 흔들리더라도 우리는 바르게 살자고 쏟아부었던 말과 글들은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전화를 한들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다.

내가 글을 보낸다고 한들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이미 깊은 늪에 빠진 것이고 헤어 나올 힘이 없을 것이다.

아니, 그는 거기서 헤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가 속한 조직이 동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도 동쪽만 보면서 갈 것이다.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고 한들 그는 동쪽에 떠오르는 해만 찾으려고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그도 아마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한 달 전에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아무런 암시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그를 만나더라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도 나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온 세상이 찬성표를 던질 때 “아니오!”하고 고개를 저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내 착각이었다.

그는 그의 길로 갈 것이다.

나도 그를 더 이상 친구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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