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불면의 날.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는 밤.
눈을 감고 양 100마리를 세어도 그다음에 101마리가 나오는 날.
몸을 이리저리 뒤척인다.
시계를 보면 새벽 한 시, 두 시, 세 시.
알람 시간이 한 시간씩 점점 짧아진다.
어깨가 점점 굳어지면서 이제 잠이 올 것 같은데 눈을 감으면 잠이 달아난다.
아예 일어나서 일찍 집을 나설까 생각도 한다.
사무실에 의자에 앉으면 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발동한다.
그래도 집에서 두 다리 쭉 뻗고 한 시간만이라도 누워 있는 게 나을 것 같다.
머리에 베개만 받히면 곧바로 잠이 쏟아진다는 사람이 있는데 이 밤에 그런 사람이 제일 부럽다.
잠이 보약이라고 했는데 매일 먹었던 그 보약을 오늘은 맛도 못 봤다.
새벽 다섯 시.
창밖을 쳐다보니 깜깜했던 하늘이 조금 흐릿해졌다.
하늘이 새벽 준비를 하는 중인가 보다.
이제 곧 밝을 것이다.
한 시간이라도 자야 한다.
그래야 하루를 견딘다.
마음이 방망이질을 하면서 다그치지만 다그친다고 해서 잠이 오지는 않는다.
도대체 내 신체 리듬이 왜 이리 망가져버린 것일까?
거실에 나와서 부스럭거려서 그런지 안방에서 아내도 잠깐 잠이 깬 것 같다.
조용히 아내의 눈치를 보고 있다.
잠을 못 자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하다.
아내라도 잠을 잘 자야 한다.
괜히 남의 잠을 뺏으면 안 된다.
그건 그 사람의 하루를 망치는 일이다.
언젠가 이외수 선생이 잠이 안 오는 날에 대해서 쓴 글을 읽었다.
아마 글을 쓰다가 새벽까지 잠을 못 잤나 했을 것이다.
그 시간까지 잠을 안 자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해서 작가들의 연락처를 꺼내서 일일이 전화해 보았다고 한다.
저쪽에서 전화를 받으면 “나 이외수외다.”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잠자다가 엉겁결에 전화를 받은 작가들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생각만 해도 우스웠다.
그런데 나는 이 새벽에 누구에겐가 전화를 걸 용기도 없다.
전화할 만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혼자서 이리로 뒤척였다가 저리로 뒤척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글이라도 한 편 써 보자는 심정으로 컴퓨터를 켰다.
오랜만에 신새벽에 글을 쓰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러다가 밤을 꼬박 새우고 출근할 것 같다.
까짓것 고작 하루인데 견뎌보자는 마음이 생긴다.
몇 년 전에는 밤 10시에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해서 새벽 3시까지 기다렸다가 설악산 등산을 시작했던 적도 있다.
그날도 동서울터미널에서 한계령 휴게소까지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잠깐 졸았던 것 외에는 한숨도 못 잤다.
그래도 다음날 대청봉 찍고 천불동계곡을 거쳐 설악동까지 내려왔다.
그 몇 년 전에는 새벽 3시에 성삼재에서 출발하여 지리산 종주를 시작했었다.
그 밤에도 잠을 못 잤었다.
그때만큼의 체력은 아니지만 오늘도 견딜 만하다.
새벽 다섯 시.
휴대폰의 기상 알람이 울리기까지 한 시간 삼십 분 남았다.
최종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 준비를 할 것인지 아니면 단 삼십 분 만이라도 눈을 붙여야 할 것인지 택해야 한다.
그래 눈이라도 붙여 보자.
뜬 눈으로 앉아 있는 것보다 감은 눈으로 누워 있는 게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노력한다고 해서 잠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 노력이라도 해 보는 게 낫겠다.
혹시 내 노력이 가상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잠을 선물로 주실지 누가 알겠는가?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나님께 비나이다.
제발 지금부터 딱 한 시간만이라도 저에게 잠을 주소서.
나를 버리고 떠나간 잠님이시여 이제 나에게로 돌아오소서.
마음으로 실컷 빌었다.
그랬더니 뭔가 조짐이 좋게 느껴진다.
이제 곧 잠이 들 것 같다.
굿 나잇!
아니, 굿 모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