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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by 박은석


나는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박완서 선생의 글들을 통해서 배웠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으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간단히 몇 페이지로 배웠던 역사가 한 개인과 한 가정에서는 몇 권의 책으로도 다 채울 수 없는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이게 정말 역사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교과서에서는 한 줄로 시대상을 정리하였지만 그 한 줄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오갔다.

박완서 선생의 글들은 나에게 그 짧은 한 줄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전까지는 역사를 간추려서 핵심적인 내용만 암기하고 넘어갔다.

조선시대 500년을 27명의 왕들 이름으로 정리하는 식이었다.

각 왕들이 다스리던 시기에 백성들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랬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세상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다.

교과서에서는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하자 사람들이 감격에 차서 거리로 뛰쳐나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했다.

교과서는 짧은 문장으로 광복의 날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이제 내 차례다.

눈을 지그시 감고 1945년 8월 15일의 어느 길거리 속으로 들어간다.

길가에 다양한 사람들이 보인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쭈그려 앉아 있는 사람들, 등에 아기를 업은 아줌마, 콧물 질질 흘리며 엄마를 불러대는 어린아이.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 누군가 크게 외친다.

“일본이 망했다! 일본이 망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갑자기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처음에는 한 명이었는데 다음에는 너나없이 외친다.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교과서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다.

교과서에는 짧은 문장과 한두 장 사진이 전부였다.

교과서에서는 길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땀냄새를 맡지 못했다.

목에서 침이 튀고 얼굴이 눈물범벅 콧물범벅이 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목이 터져라 외친 “대한독립만세” 소리들이 얼마나 웅장한 화음을 만들어 내었는지 듣지 못했고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방방 뛰면서 추는 춤들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의 떠졌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

중국의 마오쩌둥이 만리장성에 올라가서 한 말이 있다.

“장성에 올라 보지 못한 자는 장부가 아니다.”

그 한마디에 남자라면 만리장성에 한 번 가야 한다는 바람이 불었다.

만리장성에 오르면 장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시인이 말했다지 않은가?

장성은 보이면서도 장성 아래의 해골은 보이지 않느냐고.

만리장성은 말이 없어도 수많은 말을 품고 있다.




글 한 줄에는 작가의 인생이 녹아 있다.

음악 한 선율에는 작곡가의 고뇌가 묻어 있다.

그림 한 폭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화가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 한 줄의 글을 쓰기 위해, 그 하나의 선율을 짓기 위해, 그 한 폭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거기에 다 걸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 한 줄의 문장 속에서, 그 한 선율의 음악 속에서, 그 한 폭의 그림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역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사연이 없는 것은 없다.

길가의 돌멩이조차도 그 자리에 오기까지의 기나긴 사연이 있다.

아스팔트 바닥을 비집고 돋아나온 잡초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들이 모여 크고 작은 역사를 이룬다.

그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듣는 것이 나의 역사 공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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