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 사십 분.
딸아이를 기다린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내일이면 새로운 날이 된다.
길게만 여겨졌던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어제까지는 밤 열두 시에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오늘은 일찍 데리러 왔다.
독서실에서 나온 아이의 가방이 빵빵하다.
남겨두었던 마지막 짐까지 다 챙기고 나온 것이다.
지난 일 년 동안 아이에게는 공휴일도 없었다.
방학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이었다.
더운 여름에 시원한 곳으로 휴가도 못 갔다.
뒤로 미루기 선수가 되었다.
하고 싶은 것도 뒤로 미루고 가고 싶은 곳도 뒤로 미뤘다.
아이의 계획들은 모두 11월이 지난 다음으로 세워졌다.
친구들과 부산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계획을 세운 것도 근 1년이 되어간다.
엄마랑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도 했다.
그 계획도 몇 달 되었다.
내일이면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내일은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아이를 잉태하고 낳고 키우느라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은 억수로 고생을 많이 했다.
아내는 처녓적처럼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를 했다.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다 알 수 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면 아이를 깨워서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아이가 걸어가도 되었겠지만 단 5분이라도 아이가 잠을 더 잘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아내의 잠자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피곤하다는 말이 입에 붙을 만큼 아내는 정말 피곤한 1년을 보냈다.
어느 학원이 아이에게 맞는지, 어느 선생님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입시설명회를 찾아가고 선생님과 상담하는 것도 아내가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으로 실어 날랐고 학원 수업이 끝나면 독서실로 실어 날랐다.
녹초가 되어 집에 온 아이에게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주고 들어주면서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준 것도 아내가 했다.
이만큼 글을 쓰는 동안 자정이 지났다.
어제의 내일은 오늘이 되었다.
오늘이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이제 몇 시간 후에 아이는 시험장으로 갈 것이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조금 전에 아이에게 떨리냐고 물어보았는데 전혀 떨리지 않다고 했다.
그것도 다행이다.
그런데 저녁 시간부터 내 마음이 조금 떨린다.
아이가 잠을 잘 자야 할 텐데, 시험장에서 당황하지 말아야 할 텐데, 실수하지 말아야 할 텐데, 혹시 시험장에 데려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면 안 되는데,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안 되는데.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생각으로 그쳐서 다행이다.
감기도 안 걸리고 교통사고도 안 날 것 같고 아이가 시험장에서 실수하거나 당황하지도 않을 것 같다.
좀 전에 자리에 누웠는데 고 잠잘 것 같다.
몇 시간만 지나면 된다.
그러면 끝난다.
딸아이의 1년이 이렇게 마무리되어 간다.
오래전 내 아버지와 어머니도 이러셨을까? 그때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렀다.
나는 시험 며칠 전에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시험 보기 전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지내셨는지 보지 못했다.
단지 내가 시험 치르는 동안 어머니는 종일 미싱을 돌리셨다고 하셨다.
뭘 만드셨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어머니도 뭘 만드셨는지 모르신다.
그날 종일 시험을 치렀다.
사람들은 대학입학을 위한 시험이라고 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어른이 되는 시험이었다.
그 시험을 치른 후에 나는 어른이 되었다.
내 친구들도 모두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는 시험에서 떨어진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내 딸아이도 오늘 시험을 치른다.
사람들은 시험을 잘 치르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좋겠다며 덕담을 해 주었다.
나는 딸아이에게 시험을 잘 치러서 어엿한 어른이 되라고 축복하고 싶다.
그리고 이만큼 자라주어서 고맙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