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나에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하셨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고 하셨다.
정직과 성실은 우리 집 가훈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바르게 살라고 하셨다.
남 등쳐먹지 말고 남에게 본을 보이며 살라고 하셨다.
그렇게 사는 것은 쉽지 않으니까 늘 인내하며 살라고 하셨다.
바르게 살자와 인내는 우리 반 급훈이기도 했다.
나는 모범생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선생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게 살면 정말 잘살고 잘 살게 될 줄 알았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흔치 않았다.
바르게 살고 인내하며 사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제서야 알았다.
왜 정직과 성실을 가훈으로 삼고 바르게 살자와 인내를 급훈으로 삼았는지.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렇게 살자고 강조하신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셨던 아버지는 애써 모은 재산을 남에게 다 빼앗기셨다.
남의 빚까지 도맡으셨다.
정직과 성실의 대가는 뼈저린 눈물로 돌아왔다.
바르게 살고 인내하면서 살려고 하면 거짓된 사람에게 늘 잡아먹히는 것 같았다.
이런 불의를 가만두지 못하겠다고 할 때마다 참으라고 하는 말이 귓가에 울렸다.
인내야말로 최고의 덕이고 인내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들렸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말씀이다.
그렇게 학습된 말은 평생토록 우리를 괴롭힌다.
그런데 한 번 참으면 두 번 참으라고 하고 두 번 참으면 세 번 참으라고 한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세상 다 간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동안의 정직과 성실, 바르게 산 것과 인내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면서 갑자기 하늘에서 돈다발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구호를 외쳤던 때가 있었다.
동사무소를 비롯한 모든 관공서의 입구에 그 여섯 글자를 큼지막하게 써 붙였었다.
그렇게 큰 글씨를 쓰고 그렇게 크게 외치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얼마나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만들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실제로 우리는 그 당시가 가장 정의롭지 못한 시대였다고 평가한다.
요즘 가짜 뉴스를 바로 잡겠다고 하는 말들이 들린다.
그러면서 자기네가 진짜 뉴스를 만든다고 떠들어 댄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뉴스(NEWS)라는 말 자체가 동서남북에서 들려오는 소리이다.
한쪽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사방에서 들리는 소리들이다.
그 소리들을 듣고 각자 판단하면 된다.
어떤 사람은 동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사람은 남쪽에 들리는 소리에 귀를 더 쫑긋하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를 들으며 산다.
이게 진짜라고 핏대를 올릴수록 그게 가짜인 것 같은 느낌만 더해간다.
정말 진짜인 것은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 그것이 진짜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것은 거짓 뉴스이고 저것이 진짜 뉴스라고 하는 말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쪽에서 보면 거짓 같지만 저쪽에서 보면 진짜로 보이는 일들이 허다한 세상이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도 나에게 가르쳐줬다.
삶은 우리를 속인다고.
그러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했다.
삶이 나를 속이든 말든 나는 내 갈 길만 가면 된다.
삶이 나를 속일지언정 내가 삶을 속여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나온 것 같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정직과 성실하게 사는 것이다.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바르게 살고 인내하면서 사는 것이다.
비록 삶이 나를 속이는 것 같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나는 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다 보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올 것이다.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