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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02. 2023

적당히 자유를 누리고 적당히 양보하면 더 나을 텐데


문명이 발전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귀찮은 일은 로봇에서 맡기고 평생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루어질 줄 알았다.

지상낙원이 바로 우리 곁에 있을 줄 알았다.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다.

인간은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미처 몰랐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런데 그 자유는 끝도 한계도 없다.

만약 우리에게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다고 생각해 보자.

20평짜리 집에서 사는 사람은 50평짜리 집에서 살고 싶을 것이다.

50평짜리 집을 가질 자유가 주어지니까 당장 그곳으로 이사할 것이다.

그런데 옆에 100평짜리 집이 보인다면 이제는 그 집을 원할 것이다.

100평짜리 집을 얻을 자유가 주어진다면 당장 그 집으로 이사할 것이다.




넓은 곳에서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며 산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누리는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자꾸 충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를 누리는데 그가 조용히 하라고 한다.

둘이 원만하게 교집합의 관계를 유지하며 섞어 지내면 좋은데 그게 안 되었다.

그와 만나면 나의 자유가 타격을 입고 기분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맘껏 자유롭게 살고 있었는데 그가 나타나는 바람에 나의 자유가 위축되었다.

손해배상을 요구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도 나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자신의 자유가 나 때문에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누가 누구에게 할 소리인지 모르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도 지지 않았다.

나 때문에 자신이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야단을 치고 싶은 입장인데 도리어 미안하다고 해야 할 입장이 되고 말았다.




자유를 누리고 싶은 내가 오히려 자유를 억제당하며 살고 있다.

어디서 무엇부터 꼬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세계 대제국을 이룬 나라들이 이미 겪은 일이다.

그들은 다른 나라를 정복하면 더 살기 좋을 줄 알았다.

큰 나라를 만들면 걱정이 없을 줄 알았다.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 온갖 보화를 얻을 수 있고 사람도 부릴 수 있으니까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과 실제의 삶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있다.

뛰어넘기가 쉽지 않다.

거대한 나라를 만들면 그 나라에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된다.

왜냐하면 그 나라의 문화시설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가야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도시로, 도시로 모여들기에 도시의 영광이 빛날 것이다.

그 몰려드는 도시민들을 위해서 온갖 편의시설들도 갖춘다.

촌뜨기들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문화적인 충격을 받으면서 도시 생활에 점차 익숙해진다.




그런데 인간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것을 대환영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지하세계에 살고 있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그리고 설치류 동물인 쥐 같은 것들이다.

인간들이 도시에서 최고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그것들도 지하세계에서 최고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인간이 세상을 정복하고 도시를 세운 줄 알았는데 그것들이 도시를 정복하고 자기들의 세상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서 고대의 찬란했던 도시들은 순식간에 전염병의 온상이 되어서 더 이상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 되고 말았다.

자유의 대가이다.

내 자유를 마음껏 발산하려고 남의 자유를 빼앗은 결과이다.

내가 세계 최고라고 떠벌리고 다녔던 자만 때문이다.

적당히 자유를 누리고 적당히 양보하면 더 나았을 것이다.

거대한 도시 대신 작은 마을을 만들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내가 제일이라고 자랑하기보다 상대방도 괜찮다고 치켜세웠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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