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빛깔이 참 좋다.
엊그제는 비가 내려서 단풍잎, 은행잎들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는데 덕분에 온 세상이 알록달록해졌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이 풍경을 화폭에 담으려고 재빨리 사진을 찍어둘 것이다.
스케치를 하고 노랑, 빨강, 색을 칠하면 얼추 가을 풍경이 되살아난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정말 잘 그렸다며 칭찬을 할 것이다.
어떻게 이런 구도를 잡고 이런 색을 칠했는지 대단하고 할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어깨가 으쓱해질 것이다.
자신이 대단한 창작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100% 모방한 그림이다.
구도도 색깔도 모두 가을의 거리에서 베낀 것이다.
설치미술가처럼 그가 직접 이 공간에 이런 풍경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그는 너무나 좋은 풍경을 보았고 그 풍경을 화폭에 잘 옮겨 놓으려고 했을 뿐이다.
잘 모방하였더니 잘 그렸다는 칭찬을 듣게 된 것이다.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는 것들이 다 이런 식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진짜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조물주밖에 없다.
사람이 만들어 낸 것들은 이미 있는 것을 모방한 것이다.
모방한 것이니까 완벽하게 똑같지는 않고 비슷하게 만들어 낸 것이다.
빨주노초파남보 빛을 본따서 빨주노초파남보 색을 만들어 냈다.
색을 처음 본 사람은 빛과 색이 똑같다고 말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빛과 색은 다르다.
빛은 모이면 모일수록 밝아지는데 색은 모으면 모을수록 탁해진다.
울타리에 핀 빨간 장미꽃을 보고서 사람도 빨간 장미꽃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울타리에 핀 장미와 사람이 만든 장미는 다르다.
냄새를 맡아도 다른 걸 알 수 있고 손으로 만져봐도 다른 걸 알 수 있다.
가만히 두고 며칠 동안 지켜보기만 해도 울타리의 장미와 사람이 만든 장미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음을 만들고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음을 만든다.
아무것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음악을 만들어 내는 작곡가는 없다.
베토벤은 청각장애 때문에 귀로는 음을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마음으로는 또렷하게 음을 듣고 있었다.
그랬기에 <환희의 찬가>를 작곡할 수 있었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글을 쓰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글을 쓴다.
그래서 좋은 소설이란 정말로 있을 것 같은 허구의 이야기라고 한다.
아무리 자기 이야기를 썼다고 하더라도 100퍼세트 전부 맞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과 얽히고설킨 사람들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만든 이야기이다.
자신의 관점으로 비슷하게 만들어 내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나 똑같이 만들어 내었냐고 한다.
사실은 모방했을 뿐인데 그렇다.
이렇게 보면 위대한 작품은 좋은 모방품이라고 할 만도 하다.
20세기 최고의 미술가인 피카소도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피카소라는 미술가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피카소도 선배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서 따라 그렸고 그러다가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을 탄생시킨 것이다.
실제로 피카소는 앙리 마티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티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피카소는 “마티스가 사라졌다. 내 그림의 뼈대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그는 내 영원한 멘토이자 라이벌이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좋은 그림도, 좋은 음악도, 좋은 글도 모두 좋은 모방품이다.
잘 모방하면 좋은 작품이 된다.
사람이 사는 것도 모방하며 사는 것이다.
좋은 사람을 모방하면 좋은 삶을 살게 되고 나쁜 사람을 모방하면 나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내 삶도 누군가 모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