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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Nov 10. 2023

나는 당신의 행복을 소중히 합니다


중학생 때였던가, 고등학생 때였던가 독특한 이름의 시집을 보았다.

우리 집에서였는지 동네 형네 집에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동네 형네 집에서 본 것 같다.

아니 우리 집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누나들이 가끔 시집도 들고 다녔다.

시집 제목이 <예언자>였다.

기독교를 믿는 나에게는 예언자라는 단어가 익숙한 말이었다.

구약성경에 예언자들이 여럿 나오기 때문이다.

궁금하여서 몇 페이지 넘겨 보았다.

내 눈에는 시처럼 보이지 않고 짧은 산문들의 연결처럼 보였다.

애초부터 그렇게 시를 지은 것인지 아니면 우리말로 번역하다 보니까 시가 산문처럼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걸 산문시라고 부른다고 선생님에게서 배웠다.

그때 그 시집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뭔가 심오한 내용들을 배웠다는 느낌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시인의 이름은 칼릴 지브란이었다.

한 번 들은 후에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레바논 태생의 가난한 집안의 아이.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 아래서 가톨릭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아이.

재산이 몰수당하고 아버지가 감옥에 끌려가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아이.

레바논 땅에서 살기가 힘들어 머나먼 미국 땅으로 건너갔던 아이.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했는데 누이와 형은 결핵으로 죽고 어머니는 암으로 죽고, 하나 남은 여동생과 이를 악물고 살았던 청년.

운명을 저주하고 신에게 욕을 하고 삶을 놓아버릴 만도 했는데 악착같이 삶을 붙잡았던 청년.

일을 하다가 한 줄, 휴식을 취하다가 한 줄, 틈틈이 시를 짓던 청년.

자신의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을까 수줍어했던 청년.

그런 그가 무려 20년 동안 쓰고 다듬은 글들을 모아서 출판한 책이 <예언자>이다.

그는 평생 독신이었지만 평화와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레바논이라고 하면 수도 베이루트가 생각난다.

그다음에는 머리가 복잡하다.

가난한 나라,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과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 싸움이 그치지 않는 나라.

툭하면 총소리가 나고 툭하면 곡소리가 나는 나라.

칼릴 지브란이 살았던 시대에도 그랬겠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주저주저할 것 같다.

내가 그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가방 싸서 이민가겠다는 사람이 줄을 설 것 같다.

그러나 칼릴 지브란은 자기 고국 레바논을 그리워했다.

자기가 죽거들랑 레바논에 묻어달라는 평상시의 바람처럼 그는 레바논 땅 한 구석에 고요히 누워 있다.

레바논땅에 평화가 오기를 고대했던 사람, 세상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기를 꿈꾸었던 사람.

그의 시 <나는 당신의 행복을 소중히 합니다>에 그의 마음이 녹아 있다.     




"나는 당신의 행복을

소중히 합니다.     


그대가 나의 행복을

소중히 하듯.     


그대가 없이는

나에게 평화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시 <나는 당신의 행복을 소중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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